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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사랑하는 주택’과 가정 사이 / 김용창

등록 2008-02-27 19:54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2004년 3월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가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겠다면서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에서 평생 가난에 찌들어 살다 숨진 자의 넋을 달래는 위령굿을 연 적이 있다. 정말 상징적인 것이, 양재천을 사이에 두고 타워팰리스와 바로 인접하여 전혀 다른 주거지역이 펼쳐져 있다. 바로 포이동 266번지 넝마주이 마을이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이 넝마주이, 도시빈민, 부랑인 등을 모아 ‘자활근로대’를 조직하여 집단 관리하다가 81년 이곳으로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만들어진 판자촌이다.

양재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이 두 지역은 우리 사회에서 집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를 잘 보여준다. 한쪽은 재력의 저장소이자 상징이고, 한쪽은 주민등록도 없이 늘 철거 위험에 시달리면서 한 가정의 안식처는 고사하고 생존의 의미도 위태로운 처지다.

우리는 주택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주택의 본질을 물불 가리지 않는 재산불리기의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간주할 뿐 가정과의 연관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 아닌가? 서양에서 가정(home)의 어원은 ‘머리를 누이는 장소’, ‘친애하는 그 무엇’의 의미를 가지는 인도유럽어(kei)에 뿌리를 두고 있다. 17세기 모럴리스트라 불리는 프랑스 작가들에 이르러 가정이라는 의미는 가족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가정도덕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리고 17세기 초 영국에서는 시민혁명의 사상적 지주이자 권리청원을 기초한 법관 에드워드 쿡이 주택과 가정의 통합개념을 판례로 제시한다. 그는 모든 사람의 주택은 자신의 요새이며, 침입과 폭력에 대한 방어와 휴식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오늘날 가정 개념을 주택·가족이라는 의미와 통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주택은 본질적으로 가정이라는 의미를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존재다. 주택은 가정생활과 연관 속에서 감성의 형성, 남녀관계 정립, 자아 및 정체성 형성, 사생활과 친밀성 및 소속감 생성, 안식처 기능과 지역사회 형성 등의 측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응축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사유재산권의 대상이나 부동산 투자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가정으로서 주택은 안정과 안전의 장소일 수도 있지만 가정폭력이 보여주는 것처럼 공포와 두려움의 장소일 수도 있다. 이처럼 가정과의 관계에서 살펴보는 주택은 일상적 실천, 생활경험이 이루어지는 사회공간으로서 사회체계 안정성의 토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택은 일상생활, 학술연구, 정책집행의 모든 측면에서 가격 상승, 불로소득 향유의 대상일 뿐 그 의미와 해석의 다양성을 전혀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택을 수단으로 적법하게 축적한 재산증식은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다. 주택에 대한 이러한 단조로운 인식도 문제인데, 나아가 적법하다면 부동산 투기는 더는 비난받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어떤 종류의 사업보다 가치 있는 것이며, 불로소득적 증식은 사회에 속한다는 개념에서 개인적 권리라는 개념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연의 일부로서 땅을 사랑한 것이든, 몸이 아프지 않다고 하여 선물로 받은 것이든 행복한 가정생활에 여러 채의 주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포이동 266번지에 사는 사람들은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이 열릴 때 외국 관광객이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 낮에 밖으로 나가지 못한 적도 있다. 가정과 상관없이 재산증식 수단으로만 사랑하는 주택관념을 가지고서야 한 가족, 가정의 최소한의 안식처로서 주택을 걱정해야 하는 이 사회 절반의 사람들을 섬기고 헤아릴 수 있겠는가?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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