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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멘토 / 권귀순

등록 2008-03-03 21:55

유레카
‘멘토르’(mentor)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을 떠나면서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맡긴 ‘집사’의 이름이다. 동물의 강한 힘과 인간의 지혜가 결합된 ‘반인반수’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텔레마코스의 친구로 상담자로 교사로 다역을 하며 그를 잘 돌봐줬다. 장성한 텔레마코스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나설 때는 지혜의 신인 아테나와 미네르바가 멘토르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인도하는 수호천사 노릇을 했다. 인생의 조언자, 후견인을 뜻하는 ‘멘토’는 여기서 유래한다.

일상에 지친 나를 일으켜 세우고 갈 길 모르는 인생의 해답을 주는 등불 같은 존재, 멘토는 분명 힘을 주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상대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그의 꿈을 이루도록 격려하는 도움이 삶의 길목마다 필요한 법이다. 자연인 대통령에게도 물론이다. 조직에서도 인재육성의 수단으로 멘토링 제도를 많이 활용한다. 업무에 관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는 ‘멘토’가 일대일로 짝을 지어 ‘멘티’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이끌며 조직의 역량을 키워가는 제도는 퍽 요긴해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의 멘토가 최고권력과 분리돼야 할 기구의 수장이 된다면 조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멘티’인 최고권력의 의중이 ‘멘토’에게 투영되지 않는다면 이상할 일이다. 이미 권력과의 독립성이 관건인 방송통신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둔데다 최측근을 수장으로 앉히려 해 오얏밭에서 갓끈을 두 번이나 고쳐맨 터다. 1644년 존 밀턴이 처음으로 언론자유 항변서를 영국 의회에 제출한 이래, 역사는 말하는 자와 말 막는 자의 팽팽한 대결의 연속이었다. 말 막는 자가 우세였던 우리의 역사는 1987년 민주화를 분기점으로 말하는 자의 자유가 확장돼 왔다. 말길의 변곡점에 다다랐는가? 대통령과 방송통신위원장의 멘토링이 시너지를 발휘한다면 말하는 자의 목소리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귀순 여론팀장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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