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개똥도 약에 쓰인다고 했으니 체육대의 신고식이 황당무계해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자. 무언가 배울 게 있지 않을까. 제 딴엔 예절교육(?)이라는 이름까지 고안하며 애쓴 이들이다.
<인터넷한겨레> 동영상에서 전하는 예절교육은 이렇게 진행됐다. 먼저 인사법. 90도 이상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깍두기’들이 형님들에게 절대 복종의 뜻을 표하는 방법이다. 예절과 관련은 있지만 ‘조폭 소양교육인가?’라는 물음 피할 수 없다. 선배들은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 굴리고 또 굴린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원산폭격 등, 유신 군대에서 애용되던 기합이다. 혹독하기가 ‘전쟁 났나? 학교야, 학도의용군 훈련소야’ 소리가 나올 정도다. 기왕에 참기로 했으니 좀더 지켜보자.
이번엔 쪼그려 뛰기다. 유격장에서 빨간 모자의 조교가 별의별 핑계를 대며 횟수를 기하급수로 늘려가는 단순무식한 기합이지만 사람의 약함을 드러내는 데 이만큼 손쉬운 방법도 없다. 헌데 신입생의 복창이 희한하다. ‘하나’라는 선배의 구령에 ‘개념을’, ‘둘’에 ‘찾자’고 복창한다. 개념을 찾자? 그 개념 없는 구호에 어안이 벙벙해지지만, 곧 그 한심함에 포복절도하다 요절복통까지 한다. 개념이라니, 도대체 무슨 개념을 찾자는 거지? 세상에 기합을 받으며 찾는 개념도 있던가. 끝내 그들은 기대를 배반하려는가.
문득 신입생들을 이명박 정부의 사람들로 바꿔보았다. 이들도 권문에 들어선 신입생이다. 대통령과 장관, 수석비서관들이 쪼그려 뛰기와 함께 ‘개념을 찾자’고 복창하는 것이다. 설정이 그렇게 바뀌자, 한심했던 짓거리는 졸지에 선지자적 사자후로 변했다. 그건 권력에 대한 초절정 풍자였다.
투기를 땅사랑이라 하여 전국의 투기꾼에게 희망을 준 환경장관 내정자. 반통일과 통일은 통한다고 강변하던 통일장관 내정자, 선물로 오피스텔을 주고받는 여성장관 내정자 등 낙마한 이들은 제쳐두자. 부동산 투기, 탈세, 허위 경력 등 의혹 백화점인 총리, 2개의 골프 회원권이 ‘싸구려’라고 푸념하던 지식경제부 장관, 신앙심이 부족해 복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복지부 장관, 고용은 모르겠다는 노동부 장관, 시장만능주의에 ‘따듯하다’는 형용사를 붙인 기획재정부 장관 등, 하나같이 개념을 포기한 이들이다. 청와대엔 교육과 시장을 구별 못하는 교육문화수석, 표절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사회복지수석도 있으니, 개그도 이런 개그는 없다.
압권은 이렇게 인사를 해놓고도 ‘일말의 책임’만 느낀다는 최종인사권자였다. 일말이란 ‘한 번 스치는 정도’라는 뜻. 우리말에 대한 무지를 한탄해야 하나, 아니면 뼛속 깊은 무책임 정신을 탓해야 하나. 이들을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자랑했던 그는 지금도 그런 인사를 밀어붙이고 있다. 대통령의 바람막이가 되겠다는 이를 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했다. 언론의 자유, 방송의 중립성의 기본적인 개념조차 포기한 인사다. 국가정보원의 예산을 통제하는 자리에 측근인 전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을 앉혔다. 국정원의 꼬리표 없는 돈이 어떻게 쓰일지 걱정스럽다. 법질서를 강조하지만, 생존을 위한 몸부림엔 엄격하고,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뇌물을 줘 국법의 뼈대를 훼손하는 짓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사법처리를 감수하며 뇌물을 줬다고 하는데도, 뇌물 받았다는 사람을 사정기관 총수로 선임했다. 실용, 법질서, 사정의 개념이 그런 걸까.
살아온 과정이 국민들과 너무 달라 개념 찾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신고식이라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대통령이 선창하고 나머지가 복창하며 뛰다보면, 혹시 집 나간 개념이 돌아올지 어떻게 아는가.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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