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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물화 / 고명섭

등록 2008-03-16 18:21수정 2008-03-17 02:14

고명섭 책·지성팀장
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물화(사물화·Verdinglichung)라는 말은 죄르지 루카치가 <역사와 계급의식>(1923)에서 근대자본주의 인간관계의 탈인격적 성격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함으로써 널리 퍼지게 되었다. 물화 개념에는 인간 존재가 상품이나 물건처럼 사고팔리는, 그리하여 모든 것이 사물의 관계로 나타나는 이 전도된 사회에 대한 루카치의 분노가 담겨 있다. “노동력의 ‘소유자’인 노동자는 제 자신을 상품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노동력이 자신의 유일한 재산이라는 것이 바로 노동자의 특수한 지위인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한 기능이 상품이 된다는 사실에서, 탈인간화되고 또 탈인간화시키는 상품관계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은 “인격의 유기적 통일체”가 아니라 “마치 외부세계의 온갖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소유’할 수도, ‘내다 팔’ 수도 있는 ‘사물’로 나타난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가 400만 관객을 끌어들이며 흥행질주를 하고 있다. 이 영화는 루카치가 개념으로 포착했던 ‘물화’를 충격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먼저, 여성들이 성상품으로 매매되는 ‘보도방’ 세계는 물화의 세계 그 자체다. 이 세계에서 여성은 성욕을 충족시켜줄 대상으로, 가지고 놀 물건으로 중개된다. 주인공은 잃어버린 그 ‘물건’을 되찾으려다 사건에 연루된다. 물화의 더 직접적이고 끔찍한 이미지는 범죄 현장에서 나타난다. 범인은 마치 딱딱한 콘크리트벽에 못을 박듯 일상적이고도 직업적인 자세로 공사판 도구를 이용해 살인 행위를 저지른다. 희생자는 벽돌이나 나무 같은 객체로 취급된다. 범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그 무심한 초연함은 물화의 세계가 대상만 사물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도 사물화함을 알려준다. 그 물화의 밑바닥에서 희생자는 발버둥치지만 출구가 없다. 우리 시대의 사물적 인간 관계의 섬뜩한 환유라고도 할 영화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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