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야!한국사회
애들이 싸우는 이유는 대개 단순하다. 장난으로 친구 뒤통수를 쳤다. 맞은 친구는 왁왁거리고 욕을 해대다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주먹으로 더 세게 때린다. 장난을 건 친구는 억울하다. 욕도 먹고 맞기까지 했으니. 그러다 싸움은 커진다. 굳이 따지자면, 욕도 하고 때리기도 한 친구가 더 잘못이다. 남이 한 행동을 실컷 욕한 다음 자기도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이야말로 이중처벌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른바 나라를 이끈다는 사람들이 애들 같은 짓을 하는 건 보기에 딱하다. 부동산 투기하고 논문 표절한 사람이 어떻게 장관이 되냐며 욕하던 사람들이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힘 빠지는 이야기지만, 어쨌든 어영부영 그렇게 장관들은 정해졌다. 그런데 이 딱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좌파 적출론’이다. 앞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들은 물러나라는 요지인데, 코드인사 욕하다가 정작 인사권자가 되고 보니 우리도 코드 좀 맞춰야겠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새 정권의 우군 노릇을 해 온 <중앙일보>가 “공기업 자리를 정권 창출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고 물었을까. 공공기관장의 임기 보장은 한나라당이 주도하여 국회가 결정한 일이다. 공공기관장 임기를 5년으로 해서 대통령 임기에 맞추지 않는 한, 욕하다가 흉내내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돼야 한다는 말인가? 앞서 두 정권 출범 초기의 주요 공공기관장 교체비율은 각각 45.8%와 21.3%였다. 이번에는 이 숫자가 어느 정도 되어야 만족하실지?
‘좌파 적출론’의 한가운데 있는 이가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이다. 여권에서는 물론, 보수신문 사설에서까지 실명으로 퇴진을 요구한다. 노조가 벌인 여론조사에서도 70% 가까운 응답자가 퇴진에 찬성했을 정도니 안팎의 압력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이 기대하는 ‘즉각 퇴진’을 지지한 응답자는 20%였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정치적 이유로 떠밀리는 것은 반대한다는 의미이리라. 칭찬받을 만한 ‘성공한 사장’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임기 중간에 자르고 ‘거꾸로 정연주’를 임명하면 우리나라 방송이 나아지리라 믿는 근거는 무엇일까?
이미 ‘거꾸로 정연주’가 한 명 전면에 나섰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다. 오래 전 동아일보 기자를 했고, 이전까지 방송사 경력이 없는 것은 정연주 사장과 같다. 방송학자 300명 대상의 여론조사에서 이 임명에 반대한 사람이 70%니, ‘안티’의 비율도 비슷해 보인다. 게다가 이 둘은 각 정권의 언론관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믿을 만한, 코드가 맞는’ 사람이 방송언론을 총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의 증거다. 당연히 저항이 따른다. 1998년의 황규환씨, 2003년의 서동구씨를 기억하는가? 대통령의 홍보특보나 언론고문이었던 사람들을 한국방송 부사장, 사장으로 임명하려던 당시 정권의 시도는 한나라당은 물론 노조와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결국 임명은 철회되었다.
전문성도 없는 최측근을 방통위원장으로 내정하고 경영학 박사를 청와대 방통비서관으로 임명한 이 정부는 도대체 방송의 공영성에 관심이나 있는 걸까? 정연주 사장을 퇴진시킨 후 평생 건설업만 하던 최고경영자를 새 사장으로 임명할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히 하자.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애초부터 독립기구가 돼야 했다. 대통령이 수장을 임명하는 기구가 돼서는 안 되는 거였다. 선거가 끝나면 문제가 있는 법들을 개정하겠다던데, 이 방통법부터 고치시는 게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그게 정히 어렵다면, 위원장이라도 상식적인 인물로 다시 내정하시든지. 그게 애들 싸움보다는 그나마 한 눈금 높은 수준의 대응일 것이다.
윤태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