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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이 봄날에 눈물 맺히는 까닭 / 강수돌

등록 2008-03-19 19:36수정 2008-03-19 19:39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나라살림가족살림
전태일이란 청년이 있었다. 청계천 옷 공장에서 어린 여성 노동자들과 일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고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1970년 11월이었다. 산업화, 경제개발, 수출 강국, 선진국 등 구호와 함께 노동자들이 줄 이어 죽었다.

이경해란 농민이 있었다.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각료 회의장 앞에서 “세계무역기구가 농민을 죽인다”고 온 세상에 고발하며 자결했다.

정든 고향 농촌을 등지고 도시로, 공장으로 몰려든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이 1인당 소득 80달러 나라를 2만달러로 만들었다. 부자의 상징이던 자동차도 집집마다 ‘필수품’이 됐다. 바로 그 자동차 타이어 제조 공장에선 2006년 5월부터 2007년 9월까지 7명이 급성 심근경색, 관상동맥 경화증, 심장마비 등으로 숨지고 5명이 폐암과 식도암, 뇌수막 종양 등으로 숨졌다. 또 1명은 자살했다. 불과 2년 새 같은 회사에서 15명이 죽었다.

한경선이라는 선생님이 있었다.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미국서 박사까지 했다. 다른 10만여 강사들처럼 전임 교수 꿈을 안고 비정규 교수로 열심히 강의했다. 그러나 “다년간 시간강사로 버티기는 불가능”한 사회 조건들, “공정한 경쟁에 기초한 상생발전의 원리를 거스르는” 부조리와 모순, 대학의 “불공정한 처사” 등 답답한 현실을 온몸으로 고발하고자 사랑스런 딸을 남긴 채 자살했다. 2008년 2월이다.

또, 후안마이라는 열아홉 살 베트남 아가씨가 있었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2006년 12월 고향에서 한국 노총각 장씨와 결혼했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성격도 몰랐다. ‘번개 결혼’이었다. 2007년 5월 한국으로 이주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달랐다. 신부는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당신이 제게 많은 것을 알려주길 바랐지만, 당신은 오히려 제가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 베트남에 돌아가더라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에요. 당신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길 바라요”란 편지를 놓고 고국으로 떠나려다 술 취한 남편에게 걸렸다. 순간 분이 오른 장씨한테 ‘맞아’ 죽었다. 남편은 ‘사기 결혼을 당했다’고 착각했다고 한다. 후안마이의 애달픈 이별편지가 무망했다. 그를 심판한 판사는 “한국 사회의 야만성에 대해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구하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야만성’은 끝없다. 2007년 크리스마스에 실종된 초등학생 이혜진은 무참히 살해된 채 77일 만에 발견됐고 우예슬도 비슷한 운명이다. 도대체 누가, 무엇이 이 창창한 아이들을 죽이는가. 그 정든 ‘이웃사촌’은 어디로 갔나?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 사회 대다수는 행복추구권은커녕 매일 ‘삶과 죽음’ 사이를 헤맬 의무만 있다. 향후 한반도 대운하로 상징되는 각종 개발사업이나, 일제고사와 학벌 사회로 상징되는 비인간화 교육은 사람과 자연, 생명에 대한 야만성을 더 강화할 터. 사람 죽이는 사회로도 모자라 사람 살 토대마저 절멸할 건가.

전태일, 이경해 등 무수한 노동자 농민의 죽음, 한경선 외 많은 비정규 교수의 죽음, 후안마이를 비롯한 수많은 이주자의 죽음, 이혜진 등 숱한 어린이의 죽음을 깊이 애도한다. 그리고 이들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무얼 할 것인가’ 고뇌하며 하늘을 본다. 따뜻한 봄날, 텃밭의 살아 있는 흙을 일구며 눈물이 맺히는 까닭이다.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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