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1%가 아닌 100%를 위한 페미니즘 / 김영옥

등록 2008-03-19 19:41

김영옥/이대 여성연구원 연구교수
김영옥/이대 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야!한국사회
‘1%가 아닌 100%를 위한 정치: 대한민국을 커밍아웃시킬 최초의 성소수자 국회의원 후보 최현숙’의 블로그에 들어가 몇 시간을 보냈다. 그의 일기를 비롯해 태그 등 딸린 자료까지 보다가 시간가는 줄 몰랐으니, 꽤 유쾌한 소풍을 한 셈이다. 그곳에서 발견한 한 동영상은 3월8일 시청앞 광장에서 기쁨과 열정에 찬 모습으로 세계여성의 날을 축하하는 최현숙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수자의 정치세력화라는 말에 깃든 무거움을 상쇄시키려는 듯 웃음을 잔뜩 머금은 그의 몸은 광장 위를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이 모습이 더욱 힘차고 싱그러워 보였던 것은 최근에 페미니즘의 입지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5년 ‘호주제 폐지’라는 숙원이 이뤄지면서 운동의 몸집이 급격히 작아졌다거나 ‘안티 페미니즘’의 저항이 거세졌다거나 하는 말에서부터 ‘공적 거점’이었던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대폭 축소했으니 정치적으로 힘을 쓰기도 힘들게 되었다는 평가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페미니즘이 처한 쉽지 않은 국면을 가리키는 이러한 진단들은 사실 그렇게 놀라운 게 아니다. 안티 페미니즘의 저항은 페미니즘의 추구와 늘 길항관계에 있었고, 운동의 몸집이 작아졌다는 것은 운동이 그만큼 의제별로 다양해졌으며 지역단위로 목표와 내용의 성격이 다른 자율적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음을 가리킨다. 여성가족부가 여성부로 축소된 것은 분명 중대 사안이다. 페미니즘이 그동안 이룩해 낸 성과들이 함께 축소되거나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도 만만찮다.(그 단적인 예가 군가산점 제도의 부활 조짐이다.) 페미니즘은 소수자의 위치에서 주류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성평등 관점과 감수성을 일상적으로 확산하려는 페미니즘의 노력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한편,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 펼쳐진다. 샹탈 무페가 강조하듯이 ‘정치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서로 합치될 수 없는 상반된 이념들의 갈등상황을 말한다. 따라서 상반된 이념들의 차이를 억지로 지워버리는 대신 차이에 대한 정직한 인식을 통해 그것들의 공존을 정치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볼 때 이번 18대 총선은 정치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지점들을 보여준다. 10년 동안 장애여성 인권운동을 펼친 박영희가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그리고 필리핀 출신 이주 여성이 창조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지명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이들이 단순한 구색 맞추기, 혹은 들러리 서기라는 전술용 후보들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 여성들이 정치무대의 전면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사회의 의식구조가 변화하고 있음을, 페미니즘이 제공해 온 ‘다른 시각’이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일반 시민들의 동의를 얻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박영희의 말처럼 이제 운동과 정치는 별개의 것일 수 없게 되었다. 소수자 그룹일수록 이것은 중대 철학이 될 것이다. 누구에게도 ‘왜요?’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던 ‘착한 장애인’에서 ‘까칠하고 지독한 장애 여성운동가’로 변신한 박영희와 ‘커밍아웃’을 주요 정치의제로 들고 나온 최현숙은 모두 자신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한다. 그들과의 연대가 운동이 되고 정치가 될 때 이것은 대의정치의 한계를 넘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정치가 될 것이다. 최현숙과 박영희, 필리핀 여성들이 ‘1%가 아닌 100%’를 위해 제안하고 실천할 정치의 모습이 어떨지 정말, 몹시 궁금하다.

김영옥/이대 여성연구원 연구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1.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사설] ‘특검 찬성’ 의원 겁박 권성동, ‘백골단 비호’ 김민전 2.

[사설] ‘특검 찬성’ 의원 겁박 권성동, ‘백골단 비호’ 김민전

“체포 말고 구속” 윤석열 역제안의 이유 3.

“체포 말고 구속” 윤석열 역제안의 이유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4.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사설] 체포영장 거부하면서 구속영장 응한다는 윤의 궤변 5.

[사설] 체포영장 거부하면서 구속영장 응한다는 윤의 궤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