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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칼럼] 형님은 살리고 대표는 죽이나

등록 2008-03-23 20:38수정 2008-03-24 09:49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칼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성품이 온화한 사람이다. 누가 뭐라고 약을 올려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 23일 저녁 벌겋게 열을 받은 얼굴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몇 시간 전 박근혜 전 대표가 사퇴를 요구한 데 대한 응답이었다. 그는 “내가 의원직을 포기할 테니 공천 결과에 대해 더 이상 시비를 걸지 말라”고 했다.

한나라당 사태는 종식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곧바로 “‘형님’ 살리자고 이번에는 대표를 죽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도 틀린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대표는 한나라당 사태의 본질을 잘못 짚고 있다.

첫째, 한나라당 총선 출마자 50여명이 ‘이상득 불출마’를 촉구한 것은 권력투쟁 차원이 아니다. ‘형님 공천’으로 사나워진 민심을 달래지 않으면 낙선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본능적 행동이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가까운 몇 사람이 주도했다고 해서 정치적 배후를 의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둘째, 박근혜 전 대표가 겨냥한 것은 강재섭 대표가 아니다. 현직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강 대표를 대신 공격했을 뿐이다. 의도적인 ‘오조준’이다. 강 대표가 열을 받을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원칙과 신뢰가 무너졌다. 저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 “권력이 정의를 이길 수 없다.” “대표와 지도부는 정치개혁의 철학과 의지가 없고 무능하다. 책임져야 한다.”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그는 유신 체제에서 어머니를 대신해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했다. 권력 내부의 주도권 다툼으로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지켜봤다. 그래서 얻은 교훈이 ‘권력 분할’이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당권-대권 분리’ 조항은 괜히 만든 것이 아니다. 그는 당권-대권 분리가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정신과도 일치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물론 이런 명분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도 일치한다.

대선 뒤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그가 요구한 것은 ‘공정한 경선’이었다. 함의는 “당을 장악하려 들지 말라”는 경고였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당은 나에게 맡겨 달라”는 메시지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속뜻까지 알아차리진 못한 것 같다. 아니면 알고도 무시한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그동안 ‘박근혜 제거’를 끊임없이 시도한 것이 사실이다.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꽤 고위직에 있는 인사는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총선이 끝나면 한나라당은 이명박당이 된다. 친이명박 국회의원이 100명 이상 탄생한다. 대리인은 없다. 대통령이 당도 직접 챙긴다. 레임덕? 그런 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4년 뒤에 다시 공천권을 행사한다.”

이런 기류를 박근혜 전 대표가 모를 리 없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판단 착오에 있다. 세상은 지난 10년 동안 상당히 진화했다. 국민들은 이제 ‘제왕적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여당을 장악할 현실적 힘이 없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장악하려고 시도했다. 이게 가장 큰 잘못이다. ‘형님 공천’도 ‘당 장악 기도’와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와 50여명의 출마자들은 핵심을 정확히 찔렀다.

여권의 내분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은 기분이 나쁘다. 경제 살리기에 몰두해야 할 사람들이 권력 투쟁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총선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성한용 선임기자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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