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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전인권을 다시 노래하게 하자

등록 2008-04-01 19:42수정 2008-04-01 19:46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사랑과 기쁨, 이별과 슬픔, 그리움과 설레임 등 대중의 애잔한 감성을 음악적으로 잡아내는 데 작곡가 이영훈만한 선수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가수 이문세의 말마따나, 그는 언제나 이문세 뒤에 있었다. 그런 그가 전면에서 수많은 팬과 만난 것은, 엊그제 선후배 뮤지션들이 그를 위해 마련한 헌정 콘서트에서였다.

그날 이영훈은 우리의 신화로 태어났다. 표는 발매한 지 단 1시간 만에 동이 났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수천 석 객석은 빼곡히 들어찼다. 아름다운 노래에 목마른 팬들과, 그런 팬들에 목말랐던 뮤지션들은 노래하다가 웃고, 노래하다가 울었다. 그날 밤 이들 가슴엔 옛사랑이 선율처럼 흐르고, 눈에는 눈물이 봄비처럼 내리고, 입가엔 봄꽃처럼 미소가 피어났다.

그런데 빈자리가 하나 있었다. 앨범 <옛사랑> 작업에 참가했던 윤도현도 나오고, 제이케이(JK) 김동욱도 나오고, 버블시스터즈, 에스지(SG)워너비 등도 나왔는데 맏형인 전인권이 없었다. 참가한 뮤지션들이 피날레 곡으로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부를 때도 그는 없었다. 김장훈이 대신했지만, 윤도현의 젖어드는 목소리에 이어 터져 나오던 그의 목소리를 감당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날 봄밤은 따듯했지만, 마음은 아팠다.

다 안다. 전인권은 마약 복용 혐의로 투옥됐다. 이미 서너 차례 관련 전과가 있었던 터라, 지난해 8월 말 구속됐을 때 누구도 그가 풀려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를 사랑하는 가요계 후배들에게서조차 원망이 나오기도 했다. ‘왜 또 형이냐’고. 그래도 이들은 2월 내로라하는 밴드들이 모여 록페스티벌 수준의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제목은 ‘인권이 형 사랑해요’였다.

그들은 또 안다. 전인권이 지병인 대상포진으로 얼마나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그 속에서도 음악적 감동을 위해 얼마나 몸과 마음을 불살랐는지. 전인권은 2004년 크리스마스 이브, 포진이 안면을 덮친 상태에서도 콘서트를 강행했다가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포진 후 신경통’의 통증은 마약 성분이 든 진통제로나 가라앉힐 수 있다. 세상은 그에게 음악적 영웅이기만을 기대했다. 그의 고통은 외면했다. 하지만 그는 “난 니가 바라듯 완전하지 못해. 한낱 외로운 사람”(‘제발’)이었다.

그는 공동체 규범을 어겼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나 어겼다. 하지만 그가 공동체에 손해를 끼친 일은 없다. 공공의 재산을 축내거나,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 대신, 꽃이 지는 것을 보고도 울지 못하고, 사랑하면서도 가슴앓이만 하고, 억압에 절규하지 못하고, 덧없는 세월에 대해 몸부림 한번 치지 못하는 이들로 하여금 소리치고 말하고 울게 했다. 그의 노래는 자유의 하늘로 치솟는 새와 같았다.

그가 보컬리스트로 참가한 <들국화 1집>은 음악평론가들이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앨범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다. 그가 가수이자 작곡가로 등장하는 앨범 <추억의 들국화>나 <전인권 1집> 역시 100대 앨범에서 빠지지 않는다. 질곡의 1980년대, 질풍노도의 90년대에 누가 그처럼 질러댔던가. 그는 살아서 우리의 영웅이었다.

이영훈이 간 것만으로도 슬프다. 총살 직전 사면된 도스토옙스키는 ‘이 세상을 구하는 건 아름다움뿐’이라고 했다. 아름다움은 감동을 통해 드러난다. 전인권을 다시 무대에 세우자. 다시 노래하게 하자. 이 척박한 세상을 감동케 하고, 꿈꾸게 하고, 더 아름다운 곳으로 행진케 하자. 광대 출신의 유인촌 장관이 앞장서고, 앨범을 두어 장 낸 정두언 의원 같은 이들이 지원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닐 게다. 그것은 우리 시대 문화예술인에 대한 최상의 경의가 될 것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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