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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사회통합 프로그램’은 누굴 위한 것? / 김영옥

등록 2008-04-09 21:00수정 2008-04-11 09:49

김영옥/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김영옥/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야!한국사회
한국에서 8년째 살고 있는 몽골 여성 ㅁ.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 네 살 난 아이를 둔 그의 한국어 실력은 웬만한 서류나 문서들을 번역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는 자신이 몽골에서 왔다는 사실을 가급적이면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한국 사람들이 다짜고짜 ‘반말’로 말투를 바꾸고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을 너무나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법무부는 지역을 순회하며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사회통합 프로그램 이수제’의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들이 “한국어와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며” 그 결과 “취업의 기회에서 소외되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계층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라고 그 취지를 밝히고 있다. 법무부가 결혼이민자들의 사회통합을 주요 정책 의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프로그램을 국적 취득과 연결시킴으로써 적극적인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강제적인 ‘의무’ 차원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총 이수 시간이 220시간이고 주 3시간밖에 수강할 수 없으니 꼬박꼬박 다닌다 해도 1년6개월이 걸리는 긴 학습 여정이다. 이것은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출산과 양육, 가사, 노동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잖아도 위장 결혼을 방지한다고 결혼이민자들의 국적 취득을 결혼 후 2년으로 못 박아 이들의 노동시장 진입은 쉽지 않다.

결혼을 통해 한국사회로 이주해온 여성들에게 국가를 비롯해 지역이나 공동체 그리고 많은 여성단체들이 관심을 쏟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다. 이것은 단순한 실용주의적 경제논리나 왜곡된 자국민·자민족 중심주의의 편협성을 넘어서는 좀더 윤리적인 삶의 지평을 가리킨다. 이미 우리의 가족과 이웃이 되어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2년 동안 한국어 교육을 이수해야 ‘국민’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이들을 볼모로 국적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울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것이 생활문화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와 소통을 통해 체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들에게 가족뿐 아니라 지역이나 일터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이 가능한 공간들로의 접속 통로를 마련해줘야 한다. 일주일에 3시간씩 교실에 붙잡아 두는 것으로 통합과정이 완료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아무래도 사회통합에 대한 상상력 부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는 졸속과 관료주의, 그리고 자민족 중심주의의 혐의가 짙은 사회통합 프로그램 계획을 진지하게 재고하기 바란다. 이때 ‘당사자’들의 자발적 의지와 생활환경을 고려하는 한편, 다문화 교육은 기존의 한국인들도 함께 받아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적을 중심에 두고 사람들 사이에 서열을 매기는 방식은 ‘더불어’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원하는 한국인들에게도 모욕이다. 자유로운 이동으로 삶의 모든 영역이 새롭게 재편되는 지구화시대에 사실 우리 모두는 외국인이고 이방인이다. 그리고 한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이주한 나라다. 그래서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한 정책은 동시에 기존의 한국인들에 대한 정책이기도 하다. 가령 초·중·고에 ‘다문화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도입하고 한국인 남편도 아내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게 하며 지속적으로 각 나라를 이해하고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의 터전’을 만들어 사회 전반의 다문화감성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통합 아니겠는가. 우리 곁으로 찾아온 사람들과 행복하고 명랑하게, 보다 풍부한 삶의 경험과 보다 섬세한 삶의 결을 느끼며 살고 싶다.

김영옥/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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