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유레카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Utopia)>는 이상향의 세계를 그렸다. 책 제목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이다. 그리스말로 부정을 뜻하는 ‘ou’와 장소를 일컫는 ‘topos’가 합쳐진 말이 유토피아다. 테크노피아라는 말이 있다. 테크놀로지와 유토피아의 합성어다. 사실 이렇게 잘라 붙인 단어가 말이 되려면 ‘테크노토피아’가 맞다.
요즘 총선에 얽혀 정치(폴리틱스)와 교수(프로페서)를 합친 ‘폴리페서’와 정치와 언론인(저널리스트)을 합친 ‘폴리널리스트’ 같은 기이한 말들이 자주 등장한다. 영어 어원을 따지면 도저히 조합도 안 되고 의미도 통하지 않는 엉뚱한 국산 말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편의적이고 조야한 두 단어의 조어 과정을 짐작해보면, 단어가 지칭하는 무리들의 속성과 기막히게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많은 현직 교수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우르르 상아탑을 나섰다. 무작정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정치에 나아가 학문에서 배운 바를 실천하고,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기개를 품었을 수도 있다.
조선 정조 때 위백규는 수없이 관직을 고사하다가, 일흔 나이에 임금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관직을 받았다. 올라오자마자 쓴 글이 <만언봉사>다. 그는 이 글에서 “1년 내내 책 한 권 변변히 읽지 않고, 무리를 지어 떠들 줄만 알고 관에서 주는 밥이나 축낸다”고 성균관 유생들부터 질타했다.
장준하 선생과 항일 독립투쟁을 벌인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리 1순위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박정희에서 김대중 정부까지 모두 열두 차례의 관직 제의를 받았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90 나이를 바라보는 지금까지 한번도 수락하지 않았다. 학자로서 살겠다는 삶의 신조를 지켰을 뿐이라고 했다. 김준엽의 지사적 지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위백규의 양심적 기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학자다. 프로페서의 어원은 ‘고백’과 ‘양심’이다.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sjha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