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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섬김의 시대? 섬뜩한 시대? / 강수돌

등록 2008-04-16 22:22수정 2008-05-14 21:52

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나라살림가족살림
“괜히 폼 잡다가 망치는 대통령이 아니라 2천 년 전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겨주며 섬기는 리더십을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위대한 국민을 섬기는 지도자가 되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직후 본인이 장로로 일하는 교회에서 3천여 교인들과 ‘감사 예배’를 드리며 한 말이다. “경제를 살리고 국민이 화합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두 달 뒤 취임식에선 분위기가 변해 “이념의 시대가 아니라 실용의 시대”를 강조했다.

그 사이 숭례문도 불타고 귀여운 아이들도 비참하게 죽었지만, 가장 큰 사회적 화제는 뭐니 뭐니 해도 ‘한반도 대운하’다. ‘실용의 시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국책 사업이다. “국민의 발을 씻겨주며 섬기기”보다는 “괜히 폼 잡다가 망칠까” 두렵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물동량, 수송 속도, 효율성, 경쟁력, 현실성, 예산 문제 따위를 거론하고 싶지 않다. 그런 기준에서 보더라도 별 매력 없는 사업이지만, 만에 하나 장점이 있다 해도 운하 프로젝트는 안 하는 게 좋다. 그것은 전혀 뭇생명을 섬기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백성들은 대부분 강물을 ‘고이게’ 하는 대운하 사업이 강처럼 흐르는 자연 질서를 파괴할 것임을 직관으로 느낀다. 적극 지지하는 이들은 소수의 땅부자들에 불과하다. 급한 김에 “자연을 사랑해서 땅을 샀다”는 어느 장관 후보도 있었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런 이조차 대운하 반대가 참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길임을 속으로 느낄 것이다.

다음으로 ‘실용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우리가 매일 밥하거나 마시는 식수를 더럽힌다. 백성들 살림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게 흙과 물이라면 그것을 망치는 건 반실용적이다. 괜히 개발업자들 뱃속만 불리는 그런 실용(失用)이 될까봐 불안하다. 최근 아파트 미분양 사태에서 보듯 ‘묻지 마 개발’의 시대도 한계가 왔다.

게다가 사업가들조차 운하를 통한 물자 수송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같은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찬반이 엇갈리고, 탈당 뒤 ‘복당’을 요구하는 이들조차 ‘운하 반대’ 뜻을 고수하나. 전국 대학 교수들도 무려 2500명이 제1차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지금 종교인들이나 청소년들이 나서서 한강과 낙동강을 원래대로 흐르게 놔두자는 뜻에서 ‘강강수원래’(江江水原來)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직접 나서지 않는 대다수 시민들도 “괜히 인근 지역 땅값만 올린다”며 속으로 걱정이 크다.

하기야 사람이 분신을 하거나 농약 먹고 자살을 해도 그때만 반짝할 뿐, 초고속 망각증이나 초일류 불감증을 자랑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걱정과 반대의 목소리가 어떤 울림을 가질까? ‘섬김의 리더십’, 말은 좋았다. 그러나 현실은 불행히도 ‘섬뜩한 리더십’으로 나타난다. 눈과 귀를 닫고 입과 발만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다. 마음의 문까지 닫은 것 같다. 이래서야 섬김의 리더십, 즉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 봉사와 헌신으로 자연스레 신망을 얻는 지도력이 생길까?


오렌지를 ‘아륀지’라고 발음 못하면 굶을 것처럼 호들갑 떨며 ‘영어 몰입교육’이나 ‘입시교육’으로 아이들을 강제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찬가지로 백성들이 반대하는 대운하 건설을 한답시고 뭇생명의 터전, 정서적 고향을 무자비하게 파헤치는 일도 안 했으면 한다. 새만금이나 천성산, 태안 바다에서 충분히 배우지 않았는가, 무엇이 참으로 섬기는 일인지. ‘섬뜩한’ 리더십이여, 제발, 안녕! 오늘 텃밭에 상추를 두어 이랑 심으며 느낀 바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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