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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 김용창

등록 2008-04-23 19:36수정 2008-05-14 21:52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지능지수 430에 축지법과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는 황당한 사람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시절이다. 삶이 팍팍하고 경쟁 지상주의에 지쳐 모든 생애에 극심한 피로감이 엄습하는 시대에 삶 자체를 희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무겁고 차가운 현실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만 새로운 기력을 불어넣어 줄 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밖으로는 세계화라는 흐름이 무비판적으로 우리를 옥죄고 있다. 이 흐름에 반드시 편승해야만 생존한다는 세계화 결정론이며, 심지어 젖을 갓 뗀 어린아이의 삶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전략이 우리의 생존토대 자체를 갉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과 경제성장주의에 따른 기후변화가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고, 가장 우월한 생물종이라는 인간이 위험에 처해 있다. 세계화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세계화는 이른바 세계적 표준이라는 단일 기준과 영어제국의 지배를 강화하면서 인간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화에 무비판적으로 몰입할수록 언어와 문자, 고유의 생활공간과 생활문화의 관점에서 한국인이라는 종족은 그 고유성과 정체성을 위협받으면서 독립주체로서 지위를 상실하고 존재 의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안으로는 평생을 무사안일과 편법·탈법으로 살아온 사람을 국민의 대표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뜬금없이 국회의원으로 밀어넣은 현실이다. 국가 전략 수립과 실천에 몰두해도 빠듯한 때에 부동산의 노예가 된 일부 무리와 야합하여 원주민 재정착률이 20% 남짓한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뉴타운에 몰두하며, 국토 공간의 다양성에 대한 개념조차 형성하지 못하는 국민의 대표들을 보는 것도 슬픈 현실이다. 재벌의 권력이 국가의 권력과 법체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시대에 힘의 불균형에 대한 분석을 무시하고 창백한 추상적 균형론만을 이야기하는 현대 주류학문 세계도 마찬가지다.

풍요의 시대라고 일컫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집 없는 사람, 일자리 없는 사람, 신분증명 없는 사람, 대표자와 의사표현 수단이 없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생물학적 존재라는 허울만이 있을 뿐 주체성을 상실한 사회와 시대이다. 꿈과 희망과 이념이 사라진 자리를 정처 없는 현실만이 자리하고 있다. 새로운 전기가 필요하다.

대학 시절 읽었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라는 프란츠 파농의 책이 떠오른다. 골수암에 걸려 36살에 요절했던 그는 정신과 의사의 평안을 뒤로하고 알제리 해방 투쟁의 선봉에 섰다. 죽음을 1년 앞두고 쓴 이 책에서 유럽으로 대표되던 당시의 문명화 방식은 무모한 광기에 휩싸여 이성을 팽개친 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따라잡는다는 구실로 인간을 압박하거나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고, 인간을 파괴하는 수단을 써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숱한 정신과 치료에 시달리면서 끝내는 정신착란 상태에서 아내를 교살하고, 금치산 선고를 받은 뒤 자서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쓴다. 여기서 그는 말한다. “삶이란 그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지금, 나 자신으로서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청춘이 없었던 나로서는 곧 인생이 끝나게 되겠지만, 젊게 느껴진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인간적으로 극한 상황에서 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개인과 사회에서 모든 소외와 배제와 투쟁하지 않고, 비판적 성찰에 근거한 각성이 없다면 존재하는 의미도 없고, 미래의 지속도 없다는 것은 아니었을까?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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