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리처드 닉슨이 미국 대통령(1969~1974년)으로 재임하던 무렵 연 5% 안팎의 물가 폭등세가 이어졌다. 닉슨은 아서 번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하여금 새 물가지표를 만들게 했다. 가격 변동이 심한 식료품과 에너지를 빼고 산출하는 ‘근원 물가지수’가 이때 등장했다. 근원 물가는 소비자 물가보다 상승률이 대체로 낮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기인 1980년대 초엔 2차 석유파동 여파로 물가 상승률이 연 10%에 육박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집값이 물가를 부풀린다며 이를 지수 산정에서 빼고 ‘자가임대비’를 대신 넣게 했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전통산업의 상품 비중을 줄이고, 서비스와 금융부문의 가중치를 높여 물가상승률을 낮췄다. 닉슨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을 지낸 케빈 필립스가 최근 미국의 비평지 <하퍼스>에 쓴 글에 나오는 이야기다.
필립스는 과거 이런 조작이 없었다면 지난해 4%였던 미국 물가상승률은 7∼9%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했다. 또 레이건 행정부 시절 이전처럼 집값을 물가 통계에 그대로 뒀다면 2000년대 초반 이후 주택시장 호황기의 물가상승률은 공식 집계보다 3∼4%포인트 더 높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랬다면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도 없었을지 모른다”며 “통계 왜곡으로 말미암은 혜택과 이득은 워싱턴의 정치인이나 부유한 엘리트의 몫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개발연구원이 그제, 올해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가 4% 넘게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가계의 실질소득은 줄어든다. 통계상 이런저런 ‘손질’을 고려하면, 가계 부담의 크기는 공식 집계되는 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 것이다. 국제유가가 오르는 가운데 환율 급등이 물가를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경제관료들은 성장률 수치를 높이려고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수출 대기업들 말고 또 누가 혜택을 보게 될까? 중소기업이나 서민은 분명 아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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