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조선 초기 문신 송인산(~1432)은 단정하고 충직한 성품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가 갑자기 병으로 숨지자 세종은 교서를 내렸다.
“그대는 타고난 천성이 단정하고 마음가짐이 정직했다. … 헌부에 있을 때는 탄핵하는 위엄을 떨쳤고, 감사로 임명돼서는 왕명을 널리 선포하는 은혜를 베풀었다. … 이미 가버렸으니 옛 공적을 잊기가 어려우매, 휼장을 이에 더하여 영혼의 어둡지 않음을 위로하노라.” (<조선왕조실록>)
‘영혼’을 가리키는 영어 ‘솔’(soul)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다’(sea)와 연결된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깊은 바다에서 안식을 취한다고 믿었던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플라톤은 영혼을 인간의 본질로 봤고, 기독교에서는 육체와 구별되는 초인간적이고 영원한 실체로 파악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영혼과 ‘넋’ ‘혼’이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모두 사람의 몸 안에 깃들이어 몸과 정신을 다스리는 비물질적 실체다.
영혼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개성과 인간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영혼이 천박하다거나 없다고 말하면 심한 욕이 된다. 공공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영혼은 당연히 맑고 밝고 따뜻해야 한다. 송인산의 ‘영혼의 어둡지 않음을 위로’한 교서에는, 공직자로서 그의 공적과 꼿꼿한 인품을 기리면서 다른 이들이 그를 사표로 삼기를 바라는 세종의 마음이 배어 있다.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미국 쇠고기 문제에서도 정부 고위관리들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대운하 연구용역에 참여한 국책 연구기관 소속 연구원이 “이명박 정부는 영혼 없는 과학자가 되라고 몰아치는 것 같다”며 양심고백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정부 행태를 보면 국민의 영혼까지 영향 받을까봐 겁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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