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노래문화 일꾼인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함께 부른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한 소절이다. 최루탄에 울고, 물대포에 맞아 무너지던 1990년대 시위현장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물대포는 89년 처음 도입됐다. 이스라엘제 두 대였는데, 너무 커서 시위 현장에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1년 넘게 전혀 사용하지 않고 묵히자, 90년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왜 비싼 돈 들여 구입하고는 사용하지도 않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최루탄보다는 그래도 물대포가 더 낫지 않으냐는 뜻이었다.
91년 3월28일 서울대생 3천여명이 총학생회 발대식을 마친 뒤 교문 앞에서 경찰과 맞붙었다. 당시 반정부 시위가 으레 그랬듯이 한편에서는 돌과 화염병이 날고, 다른 쪽에서는 곤봉과 최루탄이 작렬했다. 이런 공방전이 계속되는 중에 갑자기 물벼락이 학생들에게 쏟아졌다. 경찰의 ‘신무기’인 물대포가 등장한 것이다. 나중에 시위학생을 가려낼 목적으로 물속에는 형광물질도 넣었다. 이후 물대포는 항상 최루탄과 함께 사용됐다. 그만큼 시위자들의 고통도 갑절로 늘었다.
물대포는 소방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국에서 개발된 폭동 진압용 기구였다. 흑인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에 물대포의 사용도 절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물대포에 쫓겨서 달아나는 흑인들의 모습으로 말미암아 물대포는 인권침해뿐 아니라 인종차별적 이미지까지 띠게 되면서 인기를 잃었다. 미국에서는 요즘 거의 사용되지 않고, 다른 나라에 수출만 하고 있다.
국민의 머슴인 경찰이 며칠 전 촛불 든 주인에게 물대포를 쐈다. ‘물대포가 가장 안전하다’며. “옛날에 우리 많이 맛봤거든. 안전한 거 이제 너그들 머슴이 맞아볼래?”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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