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어느 노동자의 죽음 / 박수정

등록 2008-06-23 21:30

박수정 르포작가
박수정 르포작가
야!한국사회
한 노동자가 죽었다. 서른다섯, 젊고 건장한 노동자였다. 사진 속, 햇볕 아래 환하게 웃던 얼굴은 이제 세상에 없다. 누군가는 그이가 당장이라도 성큼 걸어 와 따뜻한 손을 내밀 것 같아, 수화기 저편에서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를 것만 같아 못내 그리울 것이다. 살아생전 한 번이라도 그이와 옷깃 스치고 말 한자락 나누어 본 사람이라면 그 죽음이 가슴에 사무치게 아플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 노동자는 지난 5월16일, 자신이 일하는 공장에서 지게차에 치여 10여m를 끌려가는 사고를 당했다. 짐을 가득 실은 지게차는 앞을 볼 수가 없었단다. 당연히 있어야 할 신호수도 없었단다. 사고현장은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이다. 두산이라는 이름은 너무도 잘 알려지고 익숙한 이름이 아닌가. 그이는 그 두산의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었다.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지게차 운전자도 이름이 다른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두산중공업은 “협력업체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단다. 이전에도 지게차 사망사고가 발생해 두산중공업은 ‘지게차 작업 종합 안전대책’을 마련했다는데 이번 사고현장에서 신호수가 없었던 문제는, 작업장의 안전 관리·감독은 도대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안전대책은 ‘캐비넷에 고이 모셔져’ 있을까. 시간은 한 달이 지났다. 두산중공업도, 협력업체도 그 죽음과 관련해 모든 걸 마무리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말 모든 게 마무리되었나.

지난 목요일 저녁,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 버들다리, 전태일 열사 동상 뒤에 스케치북이 하나 세워졌다. 거기에는 “공장에서 다치고 죽는 억울한 사람 없도록 산업재해 추방운동을 해 온 우백이. 그런 그가 산업재해로 숨졌습니다. 비정규직은 죽어서도 차별당하는군요. 두산중공업은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라는, 복사한 글귀와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 앞에서 촛불과 향이 탔다. 그 노동자 ‘고 변우백’ 앞에 친구들은 술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모인 게 네 번째라고 한다. 각혈하던 여공도 가슴 아픈데 오히려 그 여공이 해고당하는 사실에 충격받고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실태조사를 하고 근로감독관을 찾아갔던 전태일과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에서 활동했다는 고인이 포개진다.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던 전태일 당시 노동자들과 정규직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하거나 더 열악한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는 오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겹친다. 노동·사회운동을 함께했던 이들이 다른 길을 찾아갈 때 오히려 노동자 삶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 사람이었다고 한 친구가 전해준다.

친구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두산중공업 서울사무소 앞과 창원 노동부 앞에서 일인시위를 한다. 회사에게 “안전관리 체계 미흡”에 대해 고인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엄격한 안전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고는 어쩔 수 없지 않으냐며 산재를 대수롭잖게 받아들이고 피해자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회의 ‘둔감’이 안타깝다. 일할 때나, 사고로 죽은 뒤에나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간 존엄성이 소외’당하는 현실이 속상하다. 870만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2500명에 가까운 한 해 산재 사망자라는 통계숫자가 우리에게 현실감을 잃게 했을까. 통계로 집계되는 그 한 사람에겐 삶과 꿈, 다른 누군가와 함께 수놓았던 무수한 시간이 있었다. 버들다리를 지나던 한 아저씨가 생면부지인 고인에게 정성스레 절을 올리고 명복을 빈다. 이제 기업과 사회가 한 노동자의 죽음에 예를 갖출 때다. 더 늦기 전에.

박수정 르포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김용현 “의원 아닌 요원”, SNL 찍나 [1월24일 뉴스뷰리핑] 1.

윤석열-김용현 “의원 아닌 요원”, SNL 찍나 [1월24일 뉴스뷰리핑]

[사설] 김용현 궤변 속 계엄 찬성했다는 국무위원 밝혀내야 2.

[사설] 김용현 궤변 속 계엄 찬성했다는 국무위원 밝혀내야

윤석열은 왜 이리 구차한가 3.

윤석열은 왜 이리 구차한가

[사설] 한파 속 파면·구속 외친 민심, 한 대행 더 시간끌기 말라 4.

[사설] 한파 속 파면·구속 외친 민심, 한 대행 더 시간끌기 말라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5.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