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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소와 쇠고기 / 권귀순

등록 2008-06-23 21:34

유레카
어릴 적, 논갈이가 끝나고 푸릇푸릇 풀이 지천을 덮을 때면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소를 몰고 천변으로 나다니곤 했다. 꼬리로는 배에 내려앉은 파리를 쫓으며 입은 맷돌 돌리듯 풀을 되새김질하는 소를 관찰하는 게 당시 하루 일과였다. 풀밭에 누워 소의 순한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평화가 몰려왔다. 육식을 못하게 된 건 이 무렵이다. 그네들이 고깃국에 둥둥 떠다니는 고깃덩이로 변신한다는 사실은 못내 충격이었다.

소수자로서 채식자의 고초를 ‘커밍아웃’한 것은 스무 해가 더 지난 뒤였다. 어느 날 세상이 바뀌었다. 나물보다 낫다 치던 고기란 게, 유전자 조작 작물과 같은 ‘프랑켄푸드’라는 사실이 유포될 즈음이다. 인간의 탐욕은 속속 보고됐다. 디엔에이 조작으로 몸무게가 보통 소보다 750㎏이나 더 나가는 슈퍼 사이즈 ‘식용 수소’, 하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짧은 생을 60㎝ 폭의 ‘송아지 틀’에 갇혀 지내는 송아지, 호르몬 주사 때문에 비정상적인 유방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젖소, 더는 한가로이 벌판에서 풀을 뜯는 생명체가 아니다. 다리가 묶이고 머리가 아래로 가도록 거꾸로 공중에 매달린 도축장의 컨베이어 라인은 ‘공장제품’임을 증명할 뿐이다. ‘침팬지 엄마’ 제인 구달은 <희망의 밥상>(2006)에서 세상의 밥상이 왜 ‘풀밭’이 돼야 하는지를 기록한다.

5단계 전략을 자찬하는 정부의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를 보면, “30개월 미만만 수입하기로 했다”는 내용 외에 광우병 위험부위 대책은 없다. 정부로선 성공적 결과라 할 만하다.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의 초점을 ‘국민 안전이냐’, ‘축산농 살리기냐’가 아니라 ‘30개월이냐 아니냐’로 축소하며 빗장을 활짝 열었기 때문이다. 식당의 원산지 표시 규정도 허점이 많은 터, 소비자는 이래저래 걱정이다. 근본적 저항은 초식 전향밖에 없는 것 같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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