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지옥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해낸 것은 고문에 대한 체험에서였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1980년 5월 서울 종로에서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시민 학살을 규탄하는 인쇄물을 뿌리려다 계엄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한 시인 황지우는 당시 경험을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고문은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철저히 파괴한다. 간첩죄로 기소된 강희철씨의 87년 상고심 주심이었던 박우동 전 대법관은 강씨가 “북한에 가서 머문 동안의 행적에 관해 하루 세 끼 밥반찬 종류까지 한치 오차 없는 진술을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원까지 되풀이했다”고 썼다. 어느 날 영장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붙잡혀 간 그는 불법감금 상태에서 무려 85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고문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무기징역형에 처하게 할 거짓 자백을 서슴없이 하게 만들었다. 자백은 그의 간첩죄를 입증할 유일한 증거였다. 그는 12년 동안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16년간 옥살이를 했던 함주명씨, 사법살인의 희생자가 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에 이어, 강씨가 그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겨우 세 건의 진실이 밝혀졌을 뿐이다. 숱한 고문 피해자들이 아직도 오래전 멈춰버린 삶의 시계를 되살리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생이던 고 박종철은 87년 1월 경찰의 물고문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
97년 12월, 유엔총회는 ‘고문방지협약’이 발효된 그해 6월26일을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로 선포했다.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오늘은 차마 말할 수 없던 사실들을 말하게 된 날”이라며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을 인내해 온 이들에게 우리의 존경을 표하는 날”이라고 했다. 바로 내일이다. 존경을 표해야 할 사람이 우리나라에 아주 많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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