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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인터넷 긴급조치 발동하는가

등록 2008-06-24 19:45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권력의 ‘비판여론 박멸사’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표현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전제왕조는 참언을 반역죄로 징치했고, 박정희·전두환은 유언비어 색출을 위해 반공법·국가보안법을 동원했다. 히틀러나 스탈린 등은 관변 정보 이외의 항설을 반민족 반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처형했다.

박멸 장치 가운데 압권은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9호였다. 유언비어 날조·유포나 집회 및 시위 금지는 물론이고, 유신헌법에 대한 부정·반대·왜곡·비방 등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보도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였다. 그 폭압성이 얼마나 심했던지 유신정권에 나름대로 관대했던 미국 정부조차 “너무 거칠다”(하비브 국무부 차관보)는 의견을 전달할 정도였다. 이에 걸려 체포된 1천여명 중 대부분은 유언비어 날조·유포 혐의였다.

이명박 정부와 추종 언론은 비판여론에 ‘괴담’이란 이름을 붙였다. 치명적인 괴질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괴담 박멸을 위해 각종 권력기구는 물론 심지어 교육청까지 동원했다. 수구 언론도 사냥개 노릇을 자임했다. 그러나 수백만이 생산하고 유통하는 인터넷 괴담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속이 없자 이명박 대통령은 “신뢰 없는 인터넷은 독”이라며 역정을 냈다.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했던 다음날이었다.

그러자 경찰은 인터넷 정보전담팀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청와대엔 인터넷담당 비서관제가 신설됐고, 법무장관은 인터넷 소비자 운동에 대해 전면적인 수사를 지시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실명제 확대 방안을 내놨다. 전광석화와 같은 폼이 33년 전 긴급조치 9호 발동 때를 연상시킨다. 앞서 검찰은 인터넷 포털 나우콤 대표를 구속했다. 저작권법 위반 혐의였지만,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 운영과 관련한 괘씸죄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촛불집회 기간에 아프리카는 2만여 채널을 통해 촛불집회 현장을 생중계했다. 수백만이 아프리카를 통해 시위에 가담했으니,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아고라를 운영하는 ‘다음’은 현재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군중이란 말은 지금까지 부화뇌동, 맹목적, 비합리적 따위의 수식어와 함께 떠올랐다. 주체적인 판단이 없고, 판단에 이르기까지 합리적 사유 과정이 없으며, 사유의 근거인 정보 또한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치권력이 바라는 국민은 바로 이런 군중이었다. 그래서 독재권력은 항상 정보를 차단하고 통제하며, 비판적 여론을 박멸하는 등 우민화 정책을 썼다.

감독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언더그라운드>는 이에 대한 절묘한 풍자였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은 모른다. 외부세계와의 유일한 통로인 마르코가 알리지 않은 탓이었다. 지하의 그들은 심심찮게 울리는 가짜 공습 사이렌 속에서, 빨치산의 대독 항전에 쓰일 무기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그사이 마르코는 무기를 암시장에 팔아 돈과 권력을 챙긴다. <언더그라운드>는 독재권력이 꿈꾸는 유토피아였다.

사실 매체가 많지 않던 시절 이런 꿈은 실현될 듯했다. 그래서 방송과 신문을 장악하고, 세간의 괴담을 열심히 단속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이젠 시도조차 어렵게 됐다. 수백만 누리꾼이 정보를 생산하고, 무수한 채널이 이를 실시간으로 유통하고, 수많은 광장에선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토론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군중은 이미 ‘집단 지성’으로 바뀌고 있다.

이명박 정부나 수구언론이 인터넷을 원망할 순 있다. 그러나 인터넷을 장악하거나 이른바 괴담을 박멸할 순 없다. 유신정권의 긴급조치를 동원해도 불가능하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차라리 인민을 싸그리 바꾸는 게 쉬울지 모른다. 명박산성에 이어, 명박호테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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