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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촛불과 헌법 / 정정훈

등록 2008-06-25 19:52

정정훈/변호사
정정훈/변호사
야!한국사회
촛불은 헌법과 만나, 권위의 그림자에 가려진 채 누렇게 먼지 묻은 헌법조문들의 속살을 비춰냈다. 제36조 제3항 건강권 침해 문제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제1조 국민주권을 선언한 때, 그 만남은 가장 밝게 빛났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헌법 제1조를 노래한 그때가 헌법이 이전까지의 무거움을 벗고, ‘생활 헌법’으로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제21조 언론·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는 촛불의 길 그 자체였다. 말과 광장이 우리들의 무기였다. 새로운 소통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으로 새로운 시민적 주체들이 형성되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현행 집시법으로는 집회의 자유가 보장될 수 없다는 점을 몸으로 알고 있다. 집시법이 실질적으로는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알리바이에 불과하다는 인식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항이 축제가 되는 명랑한 언어들로 표현의 자유가 행사되었다. 대중들은 낡은 보수 언론을 훌쩍 넘어서는가 하면, 권력의 언론 장악 시도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불매운동을 통해 제124조의 소비자 권리를 행사하면서, 제21조 언론의 자유가 언론기업의 무책임한 자유가 아님을 분명히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홍보하라는 행정지침을 거부한 공무원노조 간부들에 대한 정부의 징계 방침에 대해 ‘불의의 하수인’이 되길 거부하고, 제7조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공무원의 지위를 선언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제12조 신체의 자유와 적법절차의 보장을 통해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지키려는 변호사들의 노력도 있었다. 이른바 ‘고대녀’ 사건을 통해서는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으로부터 침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제45조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의 조건을 확인하기도 했다. 육군의 전경 전환배치에 대한 문제제기로, 제39조 제2항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말미암은 불이익 처우 금지 규정의 의미도 살펴볼 수 있었다. 1995년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을 기각한 바 있지만, 경찰의 치안업무인 집회·시위 진압 임무는 국방의무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재판관 4명의 유력한 반대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촛불의 의제가 대운하·민영화 문제로 확산되면서, 제35조 환경권과 제119조 제2항 경제 민주화 조항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헌법 조문들이 거리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생활의 광장에 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촛불이 누그러져 가는 요즘, 이제 “거리질서에서 헌법질서로 돌아올 때”라며, 법치 회복을 요청하는 주장이 드세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촛불의 길 자체가 이미 헌법의 질서였기 때문이다. ‘불의의 법’에 저항하는 시민 불복종도 그 헌법질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촛불 이후를 벼르는 목소리들이 높다. 촛불과 헌법의 만남으로 열어놓은 자유의 공간을 ‘법의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축소하려는 시도들이 눈에 들어온다. 광장을 치워 버리자고 하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집시법을 개정하려 하며, 인터넷상의 소통에 장벽을 세우려고도 한다.

촛불 이후의 과정은 촛불집회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하여 어떠한 헌법적 해석과 실천으로 응답할 것인가를 둘러싼 각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과 촛불의 만남은 생활규범으로서의 헌법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동시에 경제 민주화를 규정한 제119조 제2항을 헌법에서 삭제하려는 시도 등 헌법 정신을 축소하려는 반격이 예상되기도 한다. 촛불로 밝혀진 헌법을 생활에 적용하며, 정의를 세워가는 부단한 ‘해석의 노력’이야말로 촛불 이후의 중요한 과제다.

정정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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