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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3년 전에도 촛불이 있었다 / 이범

등록 2008-06-30 20:06

이범 곰TV 강사
이범 곰TV 강사
야!한국사회
2002년의 미선·효순이 촛불과 2004년의 탄핵 촛불은 한국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고 지금도 회자된다. 종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2008년의 촛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2005년에도 촛불이 있었다. 그때도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상처와 좌절만 남긴 채 끝났고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04년에 정부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고교 내신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고, 수능은 등급제로 바꿔 지원자격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똑같은 ‘한줄로 세우기’라면, 수능으로 수십만명을 한줄로 세우는 것보다 내신성적으로 수십∼수백명을 한줄로 세우는 게 체감되는 경쟁강도가 훨씬 높지 않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새 제도가 처음 적용된 2005년의 고1 교실은 친구의 책을 숨기고 공책을 찢는 ‘정글’이 되었다. 뒤이어 ‘고1 중간고사가 끝나고 비관자살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속출했고, 중간고사 성적이 기대에 못미친 학생들은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내신지옥에서 탈출하려 했다. 심지어 현직 교감이 나에게 전화해서 “아들이 시험을 망쳤는데 자퇴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정부의 기대와 반대로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한 사교육이 번창했다. 결국 학생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전교조 쪽 사람들이 찾아와 이 제도가 얼마나 좋은 제도인지 아느냐고 큰소리 치더라”고 증언한다. 이 불행한 2005년의 소년소녀들은 ‘진보’ 언론한테서도 대부분 외면당했고, 결국 잊혀졌다. 원인을 제공한 정책결정자들도 거의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에 관해서는 여러번 사과했지만, 교육문제에서는 정부의 대입안이 나중에 대학들에 의해 왜곡된 점에 대해서만 분통을 터뜨렸다-마치 왜곡되기 전의 원래 제도는 좋은 제도였다는 듯이.

소통의 문제는 청와대와 촛불시위대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힘과 조직을 가진 교육관료와 교사들에 비해,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학생·학부모들과는 아무도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학부모들과 거의 소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주물러 왔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이전 정부들 사이에는 사실 별다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이러한 ‘교육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 바로 대학이다. 2004년의 대입안도 대학교수들의 작품이었다. 그들은 보통 학생·학부모들을 몇 명이나 만나 보았을까? 아니, 학교에 가 보기나 할까? 의대 교수들은 미래의 의사들을 키워내고자 병원에서 직접 환자들을 진료하며 의대생들을 ‘굴린다’. 반면 사범대와 교대 교수들은 초·중·고교생과 학부모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으면서 안락한 강의실에서 미래의 교사들을 가르친다. 그런 분들이 교육문제에 대해 근엄하게 한 말씀 내놓거나 ‘교직의 전문성’ 운운하는 모습에 대중은 냉소로 맞선다.

거대한 ‘우리들’로 뭉쳤던 짧은 경험은 무한한 상상력과 해방의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다시 답답한 소통의 문제에 직면한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약자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구태의연한 교육관료와 무감각해진 교사들 사이에서 호소할 곳이 없다. 일부 열등생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라-전교 10등 안에 드는 학생이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마는 모습도 적잖이 목격된다. 명박산성은 ‘저들’과 ‘우리들’ 사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명박산성들은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이범 곰TV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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