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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최루탄 / 김종철

등록 2008-07-01 20:44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최루가스는 1차 세계대전 때 화학무기의 일종으로 개발됐다. 1950년 영국에서 효과가 훨씬 강하고 다루기도 간편한 시에스(CS)를 개발한 뒤 군과 경찰에서 최루가스 사용이 크게 늘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동굴 등을 수색하면서 토끼 사냥하듯 최루가스를 마구 뿌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등장했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주검은 1960년 3·15 의거를 거쳐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박정희 정권 이후 군사독재 시절에는 최루탄의 전성기였다.

“탄아 탄아 최루탄아/ 팔군으로 돌아가라/ 우리 눈에 눈물지면/ 박가분이 지워질라” 60년대 시위 때 널리 불리던 ‘최루탄가’다. 65년 6·3 사태 때 학생지도부 중 한 명이었던 시인 김지하가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 노랫말을 붙였다. 팔군은 주한 미8군을 가리킨다. 사실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학생들은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던 최루탄을 미군이 지원하고 있다고 믿었다.

70년대에 ‘새야~’에서 일제시대 창가인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로 곡이 바뀌었다. 박정희 일인 독재체제가 굳어지면서 노래도 더 빠르고 강해졌다. 80년대에는 아예 노랫말도 바뀌었다. “탄아 탄아 최루탄아/ 자유의 광장을 넘보지 마라/ 주책없이 넘보는 최루탄 속에/ 민족의 영혼은 통곡한다/ 봉아 봉아 경찰봉아/ 자유의 광장을 넘보지 마라/ ...”

98년 만도기계 파업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사용된 뒤 경찰박물관에 전시됐던 최루탄을 경찰이 다시 끄집어낼 모양이다. 새로운 버전의 최루탄가도 곧 뒤따르지 않을까 싶다. 6·3 사태 때 김지하의 최루탄가를 불렀을 이명박 대통령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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