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야!한국사회
우리 집 중딩이 ‘변비’에 걸렸다. 대강 끊고 나오래도 엉덩이에 도장 찍히게 앉았다가 손만 과하게 위생적으로 씻고 나온다. 해결을 못 봤으니 부르심 받아 들어가기를 반복해 화장실 행사에 날 샌다. 나도 한때 ‘변비’였다. 저 좋아 한 거지만 결혼은 일종의 나무 옮겨심기였고, 모두 모이는 명절 때는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몸 둘 곳 없이 힘들었다. 그때 화장실은 새댁의 휴식공간이었는데, 지금 저 중딩은 무엇을 피해 화장실에서 개기시나.
기말고사가 코앞이다. 온 동네가 괴괴한 가운데 음식배달 오토바이 소리만 요란하고 학원은 기말특강으로 대목이다. 공공도서관 열람실 터줏대감인 취업준비생들은 밀려드는 ‘아가’들을 피해 사설독서실 끊어 나갔다. 부모들은 겉으로는 초연하게, 안으로는 경품 걸고 협박하고 ‘한따까리’ 해 가며 기말고사 난리를 치른다.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다만 ‘긍정적 자아상’에 ‘어느 정도의’ 성적은 필요할 것 같고, 훌륭한 동년배 집단 안에 있어야 잘 자랄 것 같고, 어린 자손 잘되나의 바로미터를 시험 점수로 삼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효도해야 했을 뿐. 그 어느 정도는 왜 항상 상당 정도인지, 외고·과고가 과연 훌륭한 아이들 모이는 곳인지, 지들 못 하는 효도는 왜 아이들에게 밀어붙이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그러나 이만하면 한가한 신선놀음이었던 듯. 나는 우리 집 중딩들한테 그래도 더 늦지 않게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듣게 생겼다. 특목고발 해일이 초등학교를 엎친 게 요 몇 년, ‘자율화’된 학교발 토네이도가 덮쳐 꿋꿋이 버티던 부모들까지 점수귀신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 축구는 고사하고 책 읽는 것도 구박하며 문제집 들이밀게 생겼다. “눈물의 ‘하’반에 들지 않기 위해.” 경기도 몇몇 초등학교에서 수학 이동수업을 한다는데 그 취지는 여러 번 설명해야 알아듣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라나.
능력별로 동질화된 집단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가르쳐 전체 성취도를 높인다? 이동수업을 위해 수업연구도 교재개발도 안 한 것 같은데? 예상되는 최선의 효과는 ‘이사’ 다니느라 운동량 좀 느는 거고 최악은 열 살짜리들을 ‘공부 못해서 미안해’/ 나 어떡해, ‘하’반 가면/ 자나깨나 수학문제집 삐끗하면 ‘중’반 간다의 전전긍긍 삼종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것이다. 사오십점 받다가도 작심하고 문제집 두 권 샅샅이 풀고 가면 백점 받을 수 있는 나이다. 꼭 그렇게 쇠고기 품질 표시하듯 아이들 꼬리표 붙여 어쩌겠다는 건지, 상등급 뼛속까지 알겨먹고 중등급 예비로 냉동실에 쟁여 놓고 하등급 소여물통에 처박을 심산인지. 불안과 채근에 떠밀려 기출문제 수십 번 반복해 푸는 것이 공부라고 믿는 건지. 그렇게 하여 (수학) 점수 오르면 그게 (교육 매출) 성장이라 어디서 금탑산업훈장 주는 건지.
불투명한 세상에 개인으로 맞닥뜨려 탈락 두려움에 휘둘리며 나 잘 뛰고 있나 내 새끼 잘 뛰게 제대로 투자·관리하고 있나 노심초사하는 삶, 피로하고 불안하다. ‘시장’과 시장 닮지 못해 안달인 ‘교육’이 이제 열외는 없다며 초등학생까지 그 대열로 밀어넣고 있다. 변비엔 약이라도 있지 우울과 자살과 묻지마 폭력은 어쩌려고 이토록 애들을 ‘자율적’으로 괴롭히나.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7월30일이다. 학생 있는 집의 휴가는 학원 휴가에 맞춰 8월 초로 통일된 지 오래니 다들 집에 있을 터(아님 휴가 연기하고), 대통령만큼 중요한 그 자리를 잘 뽑아 날도 더운데 촛불 들고 나설 일 더 만들지 말자.
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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