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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서울광장 / 정남구

등록 2008-07-08 20:33

정남구 기자
정남구 기자
유레카
‘안개’로 유명한 서울 장충단공원은 해방 이후 각종 정치집회가 단골로 열리던 곳이다. 특히 야권이 이곳을 애용했다. 1957년 5월25일 민주당 조병옥 대표최고위원이 20만명의 청중 앞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실정을 비판할 때, 정치 깡패들이 난동을 부린 사건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3·15 부정선거’로 잘 알려진 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둔 그해 2월7일 민주당은 ‘부정 및 조기선거 규탄 강연회’를 장충단공원에서 열었다. 그날 자유당도 서울운동장에서 ‘정·부통령 후보 출마 환영 강연회’를 열었다. 당시 한 신문 보도를 보면, 서울운동장엔 ‘버스·트럭에 실려온 민심 6만’이 모이고, 장충단공원에는 ‘걸어온 민심 13만’이 모였다고 한다.

그 집회가 열린 이틀 뒤 장충단공원에 누군가 큰 구덩이를 곳곳에 수도 없이 파놓았다. 더는 대중집회를 못 열게 한 것이다. 알고 보니 서울시가 한 일이었다. 당시 서울시 건설국장은 “금호동 등에 있는 교차로를 없애면서 거기에 있던 나무를 장충단공원으로 옮겨 심기로 돼 있었다. 움이 트기 전인 요즘 옮겨 심어야 한다”고 했지만, 왜 그랬는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그 시절 ‘광장’ 구실을 하던 장충단공원을 지금은 ‘서울광장’이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그 서울광장의 잔디를 바꾼다며 지난달 말부터 사람 출입을 막고 있다. 잔디를 바꾼 뒤에도 뿌리 활착에 필요한 2주일 가량은 드나들지 말란다. 이유야 뻔한데, 그것만으로 안 되자 경찰이 아예 광장을 봉쇄하고 있다.

장충단공원이 파헤쳐져 집회장으로 쓸 수 없게 되자 야당은 3월5일 유세를 서울운동장에서 했다. 장충단공원 집회보다 훨씬 많은 20만명이 모였다. 그래도 부정선거는 막을 수 없었지만, 그 뒤 4·19 혁명이 일어났다. 지난날의 경험에서 배우려는 자는 역사의 한두 페이지만 읽어선 안 된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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