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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법 해석의 정치적 커밍아웃 / 정정훈

등록 2008-07-16 21:10

정정훈 변호사
정정훈 변호사
야!한국사회
공안 회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공안이 작동하는 방식은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며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었다면, 최근의 공안통치는 권력적 법 해석을 통해 이뤄지는 양상이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검찰의 대응은 권력적 법 해석과 적용의 전형이다.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의 배임 혐의 수사와 소환, 특별수사팀을 꾸린 ‘피디수첩’ 수사, 법무부 장관의 지시에 따른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 수사, 민주노총 간부 소환, 인터넷 뉴스의 댓글 수사 확대, 농심 고소 종용 논란 등.

정치적 목적의 개입이 우려되는 사안들 대부분이 법 해석과 적용에 관한 뜨거운 쟁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법원의 조정 권고에 따른 행위가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는지, 2차적 불매운동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지, 정부 정책을 다룬 언론 보도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되는지. 법 해석에 대한 논란의 와중에서 진행되는 수사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권력적 법 해석이 우려되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지난 3일 ‘흔들리는 촛불 너머 길 잃은 법치주의를 우려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보수언론 광고 중단 네티즌 압박의 법률적 문제점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회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변협 회원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다. 성명서 너머 흔들리는 변협의 중립성과 길 잃은 권력적 법 해석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성명서는 “일몰 후의 야간집회가 그 자체로서 이미 불법이라는 점마저 평화시위라는 명분하에 감추어”졌고, 촛불집회를 “광우병 확산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막연한 불안 때문”이라고 전제하며, “헌정질서가 파괴되지 않도록 불법행위자들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할 것을 정부에 주문한다. 그리고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일부 종교인들”에 대한 우려와 “이념을 초월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코자 하는 통일된 사명과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라고 변협 회원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성명서에 새로운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반복할 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변호사협회라는 객관성과 중립성의 형식으로 정부 입장을 지지하고 강화한 것이다.

인권은 법보다 더 큰 가치다. 인권은 ‘법에 의해서’ 보장될 뿐만 아니라, ‘법에도 불구하고’ 보장돼야 하는 핵심 원리다. 변호사법의 규정처럼 변호사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는 사명을 지닌다면, 변협도 마찬가지다. 변협은 법과 처벌을 말할 뿐 인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침해된 시민들의 인권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성명서는 ‘법은 법이다’라는 동어반복의 폐쇄회로에 갇혀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권력적 법 해석의 오랜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변협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나 시변(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헌변(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과 같이 자발적으로 가입한 회원들로 구성된 임의단체가 아니다. 법으로 변호사의 가입을 의무화한 공법인이다. 회원들 사이에 서로 다른 다양한 견해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려는 집행부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소통되지 않은 독단적 입장이 성명서 형식으로 선언됐다. 그 내용뿐만 아니라 절차도 민주적 의사 결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바야흐로 법 해석이 정치적 커밍아웃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법은 서로 다른 해석들이 대화하고 경쟁하는 담론의 장이다. 법의 이름으로 법을 모욕하는 권력적 법 해석에 맞서는 법 해석의 싸움은 법률가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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