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정 미술평론가
야!한국사회
서른을 앞두고 나는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했다. 10년 전이다. 하필 그 무렵 가세가 기울어 학비 걱정에 24시간 운영되는 학교 도서관에 남은 적도 잦았다. 밤새 읽던 전공 원서로 수강 교과목에 따라 19세기 유럽 미술사, 30년대 미국 미술 운동 등이 있었다. 좋아서 시작한 공부지만 어느 모로 보나 당대적 학문일 순 없었다. 심신의 피로가 밀려오는 동틀 무렵, 환하게 불 밝힌 도서관 복도를 서성대며 열람실을 구경하곤 했는데, 주인 없는 책상 위로 다음날 좌석을 차지하려고 짐을 놓아둔 곳도 많았다. 이 경우 열에 아홉은 고시 준비생이다. 그 형태가 워낙 정형화되어 단번에 알 수 있다. 그 자체로 위압적인 일천쪽 가량의 법전들, 시야를 가릴 만큼 높다란 2∼3단짜리 독서대, 색깔별 형광펜의 가지런한 도열, 숫제 슬리퍼를 의자 밑에 두고 간 경우까지. 장차 고급 공무원(행시)·외교관(외시)·법조인(사시)을 지망한 이들의 운명이 그때나 지금이나 약간도 부럽진 않았지만, 요컨대 100년 때론 500년 전 딴 나라 미술 사정을 뒤적이던 나의 처지를 상대적으로 처량하게 보이게 한 건 분명했다. 그 종류를 좀체 기억하기조차 힘든 숱한 고시들에 매달려 전력질주 중인 수험생 틈바구니로 비인기종목 인문학을 붙들고 있는 건 차라리 용기부터 필요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막연한 불안은 가중되었고, 저 혼자 속세로부터 낙오하는 것 같아 그 열패감에 힘겨웠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나는 당시 전공을 생계와 연관시킨 운 좋은 경우다. 폭염을 피해 이미 졸업한 대학 도서관으로 드물게 ‘피서’ 갈 때도 있다. 그런데 고시생의 정형성은 여전했다. 두툼한 법전 더미, 유행을 외면한 복장과 샌들 차림 또는 추리닝에 슬리퍼, 독서대를 중심으로 좌우로 높다란 산성(!)처럼 쌓은 종이 칸막이, 예의 빈자리 찜하기 등등. 시류를 벗어난 패션 감각이야 각자의 자유라지만 타인의 독서권까지 일방적으로 침해하는 이들의 고질적 행태는 괘씸함을 떠나 실로 두렵고 우려된다. 이들 중 일부가 최종 합격해 국가 행정·외교 업무, 사법 질서에 간여할 후보자들이어서다. 괜한 우려가 아니다. 현실이 명백히 증거한다. 쇠고기 조공 협상 후 반성은 고사하고 이를 폭로한 방송사를 고소한 농식품부, 국제무대에서 실정을 거듭한 외교부, 재벌총수 기소는 곧 집행유예라는 비명문화된 정식을 세운 사법부.
<문화방송>의 ‘뉴스후’ 보도는 사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집단인지 보여준다. 상고이유서 한 장에(이후 기각됨) 수임료 2500만원을 집어삼킨 전관예우 변호사, 타국에선 거의 전례를 찾기 힘든 성공 사례금 관행, 기준 자체가 부재한 수임료. 이런 구차한 축재로 그들의 삶은 얼마나 더 윤택해질까?
고시생의 책상 앞에(혹은 머릿속에도) 곧잘 붙어 있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거나(해병대 지원했나?),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자’ 따위의 표어가 장차 이들이 꿈꾼 공익 수행자를 위한 예비 다짐인지 아니면 사치스럽고 수치스런 사익을 채우려는 이기심의 표출인지 헷갈린다.
고시 최종 합격자의 평균 연령이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이란 통계치를 본 기억이 있다. 이미 입시교육에 길들여져 대학 합격 후 제대로 된 인성교육이나 인문 지식, 생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또다시 입신양명의 길에 선 ‘우직한’ 이들이 과연 공익을 담당할 자격이나 있을까? 고시생의 어두운 표정, 철 지난 패션, 정치 무관심, 그리고 열람실에서의 이기적 행태 등이 현역 관료들의 현실감각과 다를 게 뭔가?
반이정 미술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