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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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이에게 자(字)를 지어 부르거나, 그것도 모자라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아호를 지어 쓰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도 대부분 아호를 갖고 있다. 우남 이승만, 해위 윤보선, 중수 박정희, 현석 최규하, 일해 전두환, 용당 노태우, 거산 김영삼, 후광 김대중 등이다.
대중이 정치인을 아호로 부르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특히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 ‘일해’는 ‘우아한 이름’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그가 기업인들에게 돈을 그러모아 설립한 ‘일해재단’은 간판이 떼졌다. 합천군이 새천년 생명의 숲을 ‘일해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지금껏 비난을 사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는 한때 ‘오늘’로 알려지기도 했다. 5공 시절 방송이 버릇처럼 ‘오늘 전두환 대통령은 뭘 했다’는 동정 보도로 저녁 뉴스를 시작해서다. ‘한편, 부인 이순자 여사는 무얼 했다’는 보도가 이어진 까닭에, 이씨의 아호는 ‘한편’이란 말도 나왔다.
권위와는 거리가 멀어서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만은 아호가 없다. 그러나 ‘오늘 전두환’에 빗대어, 그의 아호는 ‘또’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잘 굽히지 않았고, 그 결과 집권기간 내내 ‘또 노통이’ 무슨 말을 했다는 비판적인 보도가 언론에 많이 등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송’이란 아호를 쓰다가 2005년 청계천 복원공사가 마무리된 뒤 ‘청계’로 바꿨다. 물론 이 또한 잘 쓰이지 않는다. 김영삼을 와이에스(YS), 김대중을 디제이(DJ)라 불렀듯, 엠비(MB)로 더 흔히 불린다. 그런데 ‘또 노무현’식 이름 붙이기를 하자면, 이 대통령의 아호는 ‘격노’로 굳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취임 다섯 달밖에 안 됐지만, 그새 그가 격노한 일이 그만큼 많았던 탓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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