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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공무원 퇴출제라는 서바이벌 쇼! / 정정훈

등록 2008-08-06 18:59

정정훈 변호사
정정훈 변호사
야!한국사회
최근 퇴출 대상자로 분류되어 ‘현장시정지원단’의 교육(?)과정에 있는 서울시 공무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50대 중반의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내내 짓밟힌 존엄과 무너진 자존심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국토종단 도보순례’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행군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살갗이 벗겨진 발을 내보이며 그는 말한다. 살아남을 것이라고, 대학에 다니는 아이 때문에라도 자신은 이 모욕을 견디고 꼭 살아남아야 한다고.

서울시와 농촌진흥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 퇴출제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은 논리로 정당화된다. 퇴출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직위해제가 가능하지만,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살 길을 열어주는 것이니 고마워하며 거기서 살아남으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다시 간단히 말하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논리다. 퇴출 대상자 3%(서울시), 5%(농진청)라는 고정 할당량을 정해놓고, 객관적이지 못한 평가방식과 절차를 적용해 ‘불량’등급으로 선정한 대상자들을 곧바로 직위해제나 직권면직을 시킨다면 부당한 해고라는 법적 평가를 벗어날 수 없다.

최근 대규모 퇴출제를 시행한 농진청의 사례를 보면 그 실상이 명확해진다.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근무평정, 통합 성과관리 시스템 등 기존의 평가제도는 무시되었다. 직원들 간의 다면평가는 1인당 평가 소요시간이 짧게는 2분으로 평가 대상자가 제출한 자료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제한된 시간에 이루어졌다. 더욱이 ‘살생부’를 작성하라는 암묵적인 의미를 읽었을 공무원들이 고뇌하며 동료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였을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선정된 퇴출 대상자는 평가의 구체적인 근거를 알 수도 없고, 그 결과 이의신청을 하기도 어렵다. 이쯤 되면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고 호통 치는 원님 재판이다. 정당화될 수 없는 절차들이다.

그래서 ‘현장시정지원단’(서울시) 또는 ‘농업현장기술지원단’(농진청)이라는 모욕적인 서바이벌 쇼 프로그램이 도입된다. 퇴출 대상자들에게는 ‘존엄’을 버리고 ‘생존’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막다른 질문이 던져진다. 프로그램 ‘주최측’은 대상자들을 ‘불량 공무원’이라는 낙인을 찍어 놓고는 제 발로 나가주기를 기다린다. 농진청의 경우 대상자 105명 중 65명이 자진퇴직을 선택했다. 자진퇴직한 사람들이야 소송 등으로 문제를 일으킬 일도 없다. 이제 인사권자들은 남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간의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홍보·운영하면서 살아남을 사람을 선심 쓰듯 선발하면 그만이다.

공무원 조직에는 ‘본때’를 보였고, 인사권자들의 ‘조직 혁신’ 노력도 평가를 받았을 터이다. 언론은 아주 가끔 “퇴출 후보들, 어떻게 지내나”라는 정도의 선정적인 제목을 뽑아서 대다수가 강한 복귀의지로 재교육에 임하고 있다는 ‘주최측’의 조사결과를 인용 보도한다. ‘철밥그릇’ 깨자고 합의했던 시민들은 그저 몇 명이 살아남는지 정도에 호사가의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퇴출 대상 공무원들의 존엄을 희생양으로 삼은 서바이벌 쇼는 완성된다.

<텔레비전과 동물원>이라는 책은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인간 동물원’의 뿌리 깊은 유사성을 지적한다. ‘서바이벌’과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전시되는 개인들의 존엄성은 송두리째 뿌리 뽑히고, 보는 사람들 역시 이렇게 조련된 현실에 동화되게 된다. 공무원 퇴출제라는 모욕적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서바이벌 쇼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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