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곰TV 강사
야!한국사회
얼마 전 한 기자가 나에게 전화로 질문했다. ‘경쟁을 강조하는 수월성 교육을 10, 기회균등을 강조하는 평준화 교육을 0’으로 설정하면 나의 뜻은 수치로 얼마쯤에 해당하냐는 것이다. 순간 ‘그래도 많이 보고 들었을 기자 양반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좌표를 들이대다니 …’ 하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일단, 대부분의 선진국이 선발경쟁을 배제하는 고교 평준화 원칙을 지키면서 동시에 수월성을 추구한다는 점을 이 기자가 명확히 아는지 의심스러웠다. 실제로 고입 선발경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에서 일본과 한국 정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굉장히 예외적인 현상인데,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또 하나 의미심장한 대목은, 이 기자가 ‘경쟁’과 ‘수월성’을 짝지운 점이다. 적절한 경쟁이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교육학의 상식이다. 하지만 경쟁이 수월성을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코 아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가 바로 핀란드다. 이 나라에서는 등수도 매기지 않고, 일제고사도 치르지 않으며, 선발경쟁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국제학력평가(PISA)에서 우리나라와 수위를 다툰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가혹한 경쟁과 무거운 학습노동을 지우는 ‘공부지옥’인 데 반해, 핀란드는 학생의 70%가 ‘공부가 즐겁다’고 답하는 ‘공부천국’(?)이라는 점이다.
왜 그럴까? 교육경쟁력 세계 1위로 공인받는 핀란드 교육의 특징을 꼽아보면 교사들의 수준이 높고, 학습동기 부여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며, 학생 개개인에 대한 밀착 돌봄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교육예산이 풍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개인간 경쟁을 거의 완벽히 배제한다는 특징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단순히 석차를 매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수업방식도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수업 시간에 4~5명으로 이뤄진 팀별로 탐구와 토론, 각종 작업이 이뤄지고, 교사는 각 팀의 진행을 계속 점검하며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학습방식을 ‘협동 학습’이라 한다. 교사가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내용을 주입하는 ‘일괄 학습’이나 교사가 학생 개개인과 상호 작용하는 ‘개별 학습’에 비해 학습 효율이 높다고 알려졌다. 예컨대 25명으로 된 반에서 학생 개개인이 1분씩 발표하는 것을 교사가 지켜보면 25분이 걸리지만, 5명씩 다섯 팀으로 나눈 상태에서 팀원들끼리 발표하도록 하면 5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팀내에서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이 뒤떨어지는 학생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우수한 학생은 자신이 아는 것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게 되고, 뒤떨어지는 학생은 교사에만 의존하는 경우보다 훨씬 즉각적인 도움을 받게 된다. 그야말로 ‘협동’을 통해 서로 발전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협동 학습은 핀란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많은 선진국 학교들에서 찾아볼 수 있고, 우리나라의 일반 학교에서도 실험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협동 학습은 팀원 개인별로 등수를 매겨 경쟁심을 유발하는 것과 잘 맞지 않는다. 학생들을 무조건 한줄로 세워 등수를 매기는 우리나라의 내신성적 제도에서는 협동 학습의 잠재력이 충분히 펼쳐지기 어려울 수 있다.
핀란드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상식으로 자리잡은 ‘경쟁시켜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가장 경쟁력 있는 학습방식이 경쟁 아닌 협동이라는 역설이, 우리에게 ‘비경쟁적 수월성 교육’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아니, ‘협동적 수월성 교육’이라 해도 되겠다.
이범 곰TV 강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