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기자
유레카
이명박 정부가 ‘577’을 과학기술 정책의 열쇳말로 내걸었다. 2012년까지 정부와 민간의 연구개발 투자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끌어올리고 7대 기술 분야를 육성해 과학기술 7대 강국에 들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숫자를 내세운 정책 이름 짓기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꽤 재미를 본 ‘아이티 839 전략’이나 이명박 정부가 내걸었다 혹독한 시련을 겪은 ‘747 비전’을 떠올리게 한다. 본래 숫자식 정책 이름은 중국·북한에서 더 일상적이다. 중국과 북한을 잘 아는 전문가 얘기를 들어보면, 중국에선 한자가 어렵고 발음도 지역마다 달라서, 북한에선 지도자의 현지지도 날짜를 강조하는 일이 잦아, 211 공정이나 217 과학기술자 돌격대운동처럼 숫자식 이름이 자주 쓰인다고 한다.
물론 577의 작명은 이런 배경과 다르다. 목표를 간결하게 요약해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숫자는 현대식 친근감을 돋운다. 작전명 암호처럼 일사불란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577에 대한 반응은 미지근하다. 5% 목표는 알려진 공약인데다 민간 투자 확대를 기대하는 목표가 현실적이고 적절한지 논란의 씨앗을 안고 있다. ‘세계 몇 대 강국’은 노무현 정부가 자주 쓰던 표현이다. 노무현 정부는 ‘8대 강국’을 목표로 내걸었으며, 임기 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2012년 5대 강국’을 다음 5개년 기본계획의 목표로 확정했다. 이번 7대 강국은 하향조정된 목표인데, 747의 7대 강국과 짝을 이루게 된 점이 흥미롭다.
새 정부는 연구기관장 일괄사표 요구, 연구기관 통폐합 일방 추진, 연구사업비 삭감 등으로 출범 초기에 ‘신뢰의 시그널’을 과학기술계에 보내는 데 실패했다. 과학기술 대통령을 기대했던 이들 사이에서도 걱정과 우려가 나온다. 사람들은 멋진 미래 구상보다는 현재 정책을 보며 ‘현실감 있는 비전’을 느끼고 싶어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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