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야!한국사회
최근 도쿄에 갈 일이 있었다. 마침 방학을 마친 한국 학생들이 미국으로 돌아가는지 일본을 경유하는 비행기는 그야말로 개학 분위기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는 도쿄에서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들이 훨씬 많았다. 어떤 통계나 추세로 보더라도 현재 우리 교육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아주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학위를 받고 나서 한국에서 공부를 위해서는 더 유학 가지 않아도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었다. 10년도 넘은 일인데, 그 후에 보니, 웬걸! 오히려 고등학생, 중학생까지 유학을 떠나게 됐고, 최근에는 대치동의 5학년 어학연수 유행까지 지켜보게 됐다.
오래 전에 학문의 ‘자기 완결성’을 만들어낸 일본과 견주면, 한국의 교육 상황이 지금 상당히 비정상적이라는 건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사회적 분리현상은 자본주의에서는 전례가 없이 고속으로 진행 중인데, 사회 지배층들이 대거 미국으로 유학 가던 중남미 경제 양극화는 ‘시카고 보이즈’라는 이름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했지만, 이 정도로 초중등 과정에서도 유학 갈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부자들과 중산층 상부는 ‘그들만을 위한 교육’을 만들려고 발버둥치는 중이고, 중산층 하부와 하류층의 공교육은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는 정도로 현재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답이 필요하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할 텐데, 이 답의 방향이 정반대로 나뉘니, 학생들만 죽을 지경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조기유학을 가는 많은 학생들이 해당 국가에서 지금 한국의 우파들이 외쳐대는 수월성 교육을 하는 영재교육 기관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공교육 내에 있는 학교들로 간다는 사실이다. 곧 특수한 학생이라 한국의 평범한 공교육 내에서는 도저히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라기보다는 살인적으로 높아진 사교육 비용을 피하느라 조기유학을 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등 몇 나라의 경우에는 역시 한국의 공교육이 받아주기를 꺼리는 장애인들이 유학을 가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안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사교육 비용과 유학 비용의 두 가지를 비교해서 많은 부모들이 유학을 결정하게 되고, 여기에 기왕이면 ‘영어’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로 ‘합리적 판단’을 하게 된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은 대학서열, 사교육,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 등 몇 가지 문제가 동시에 걸려 있어 단번에 풀 수 없다는 것 역시 당연해 보인다. 그래도 지금 풀기는 풀어야 할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 문제를 푸는 방식이 국제중학교를 도입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투자에 실패하면 그 산업을 구조조정하거나 심하면 철수하면 되는 일반 산업과 달리, 교육은 무조건 전환했다가 잘 안 되면 철수하면 그만인 그런 일반 산업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무턱대고 국제중부터 만들어놓고, 만약 부작용이 생기거나 혹은 그 학교에 간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학교 행정을 벤처 방식이나 불도저 방식으로 하면, 나중에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나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지금과 같은 국제중 도입은 일상 잔혹극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다고 경제력과 정치권력을 독점한 한나라당 정권이 뭘 하겠다는데 말릴 힘도 없다. 해도 좋다. 그러나 학생들은 실험대상 모르모트가 아니므로, 좀 잘 살펴보고 시범운용부터 해보고 천천히 하자. 학교행정을 안 되면 말고 방식으로 하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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