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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뇌물 / 김지석

등록 2008-08-24 21:52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조선시대에 장오죄(臟汚罪)라는 게 있었다. 관리가 지위를 이용해 부정하게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국가 기본질서를 뒤흔드는 매우 중대한 범죄로 다뤄졌다. 뇌물을 받고 위법행위까지 한 ‘왕법수장’의 경우에는 최고 사형까지 가능했으며, 관직 박탈과 함께 관원 명부에서도 뺐다. 사대부의 존재 근거인 관직 진출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후손에까지 영향이 미치도록 한 것이다. 왕이 수시로 시행하는 사면에서도 왕법수장 범죄자는 원칙적으로 제외됐다.

뇌물은 사회 기강을 어지럽히고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킨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뇌물은 범죄다. 그럼에도 뇌물은 흔하다. 기름 먹인 가죽이 부드럽고(한국 속담), 황금이 말하면 모든 혀가 조용해지며(영국 속담), 돈은 귀신과도 통하기(중국 속담) 때문이다. 현재 지구촌에서 오가는 뇌물은 적어도 한해 1조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을 넘는 규모다.

조선 세종 때 조말생(1370~1447) 뇌물사건이 터져 여러 해 동안 조정을 뒤흔들었다. 8년간 병조판서를 지낸 그를 세종이 장오죄로 귀양 보냈다가 관직에 다시 등용하려 하자 대사헌 등이 들고일어났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염치를 기르고 탐오를 금지하는 일뿐입니다. 대신이 되어 탐오를 범하고 염치를 무너뜨리면 마땅히 엄하게 징계할 일이지 가볍게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전통이 있음에도, 지구촌 기업들이 평가하는 우리나라의 뇌물제공지수(BPI)는 아직 후진국 수준이다.

뇌물과 선물을 구분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우선 받고 잠이 잘 오면 선물이고, 안 오면 뇌물이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서도 받을 수 있으면 선물이고, 그렇지 않으면 뇌물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치인과 권력자 친인척 등의 권력형 비리가 잇따르는 건 다들 통이 커져서 웬만하면 선물로 여기는 탓일까.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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