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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옷을 벗는다는 것 / 김미영

등록 2008-09-03 21:31수정 2008-09-08 11:09

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야!한국사회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볼 때면 마음이 불편했다. 왜 잘 차려입은 남자들 사이에 여자 혼자 홀딱 벗고 있는 거야. 옷이라는 인습에 무겁게 구속된 남자와 달리 그것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여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해설을 읽고서야 그림이 제대로 들어왔다. 남자들이 농탕질이나 관음 분위기가 아니고 여자들도 교태나 희생자 분위기가 아니다. 눈부시게 건강한 몸의 여인은 총명한 얼굴을 하고 당당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역시나 전 문화재청장님 말씀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 이렇게 분명한 것을 못 보게 한 것은 노출된 여성 몸에 대한 프티 부르주아적 도덕 때문이겠는데 프리다 칼로의 ‘탄생, 혹은 나의 탄생’ 정도로 가면 충격이 심해 유심히 보게 되니 오히려 오독이 적다.

남들 앞에서 옷을 벗는다? 남자가 여자 앞에서 그런다면 바바리맨 일명 나방맨이 연상될 것, 웃통 벗고 달려드는 남자는 여자에겐 말 그대로 ‘벌거벗은’ 폭력이다. 그가 여자이고 대상이 남자(들이 대부분인 무차별 대중이)라면 그것은 취약함을 무기로 한 약자의 저항법이기 쉽다. 흉년에 한 영주댁이 마을 사람들의 소작료 탕감을 남편께 탄원하자, 벌거벗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 들어주겠다고 하여 그렇게 했다는 서양의 일화. 긴 머리를 내려 주요 부위를 가린 채 말 타고 마을을 도는 그녀를, 그녀 몸을 보지 않으려고 모두 두꺼운 커튼을 내리고 집안에 숨었을 때, 살짝 훔쳐 본 시러베 자식(피핑 탐)은 그 후 조리돌림을 당했을까 말았을까. 삼엄한 유신독재의 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을 하던 ‘공순이’들은 깡패와 경찰들에게 잡혀가지 않으려 옷을 벗어던졌다. 기껏해야 이십대 초중반이었을 그녀들이 백주대낮에 무장한 남자들 앞에 상의를 벗어던졌으니, 참으로 필사적인 투쟁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여자의 나체에 손을 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들은 무자비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타의로 벗겨지는 경우는? 인신구속이나 성폭력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어나기 어렵다.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에는 드미트리가 친부 살해 용의자로 체포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그는 남들 앞에서 옷을 벗고 게다가 양말까지 벗어야 한다는 데 심한 굴욕감을 느낀다. 쿤데라의 ‘스탈린 아들의 똥’ 만큼이나 인간의 심오함/비루함을 상징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 살해자로 몰리는 상황에서 못생긴 발을 남에게 보일 걱정을 하고 있다! 그가 사회학자 고프만이 <수용소>에서 설명한 수감 과정을 겪었는지는 모르겠다. 감옥 병원 수용시설 등에 들어가는 사람은 우선 일체의 자기 소유물과 옷을 빼앗기고 남의 옷 유니폼으로 갈아입을 거고, 이름이 박탈되고 번호가 주어져 누구의 아들 딸 친구 아무개가 사라지고 수감자 몇 번으로 확정될 터인데. 애꿎게 들어간 사람도 짱짱한 양심수도 그 정체감과 인격의 격하와 축소에 저항하기 힘들 것인데 … 옷은 옷만이 아닌 것이다.

촛불 시위로 연행된 여성들이 경찰에서 브래지어를 벗으라고 강요당한 사건이 있었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요구하고 행동하는 그들만큼 자살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도 없을 터, 참 걱정도 팔자다. 광우병 위험을 무시할 때의 대범함과 대조되는 초정밀 배려 아닌가. 그런데 그 은혜가 왜 여성에게만 내려지나? 남자들 몸에도 고무줄이 둘러져 있고 그것에 목 매달아 죽지 말란 법 없으니 경찰은 이제부터 모든 연행자들에게 ‘똥 싼 바지’를 입혀야 할 것이다. 추상 같은 법치를 내세우는 마당에 철두철미하고 공평무사하게 말이지.

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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