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아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영구기관’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뛰어난 과학자들도 그 꿈을 함께 꾸었다. 8세기 인도 수학자 랄라는 ‘영원히 움직이는 바퀴’를 그렸고, 12세기 인도 수학자 바스카라 2세, 보일의 법칙으로 유명한 17세기 영국 물리학자 로버트 보일 등도 영구기관 연구에 시간을 보냈다. 오늘날에도 각국 특허청에는 영구기관 특허 신청이 이어진다.
경기 호황이 계속되기를 꿈꾸는 이들도 일종의 영구기관을 상상한다. 그들은 ‘자산 효과’에 기대를 건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가계는 소비를 늘리고, 이에 맞춰 기업은 생산과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산 효과는 영원할 수 없고, 나중에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경고는 곧잘 ‘재수 없는 경고’로 배척당한다. 로버트 브래너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도 그런 경고를 날린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지난 2002년 <붐앤버블>이란 책에서 “세계적인 과잉설비와 과잉생산 상황에서 미국 제조업은 고평가된 환율 때문에 경쟁력 확대, 수출 증가와 이윤율 증가에 기반한 성장경로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막혀 있다” 고 경고했다. 미국은 경제 붕괴 위기를 저금리 정책에 기댄 자산효과로 눈가림하고 있을 뿐이란 지적이었다. 그의 말에 귀기울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달러 가치는 2002년부터 본격 하락했다. 그래도 미국 경제의 성장동력은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지금은 자산 가격까지 폭락하면서 미국 경제가 정말 위기를 맞고 있다. 브래너는 그 책에서 “미국의 불황이 세계 불황의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며, “특히 동아시아가 다시 세계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또다른 ‘재수 없는 경고’를 날렸다. 그가 틀렸음을 보여주려면, 막연한 낙관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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