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야!한국사회
빚도 자산이라는 강의에 놀란 신영복님은 경영학 때려치고 인간적 경제학을 꿈꾸다 군부독재의 감옥에 장기간 갇혔고, 빚도 자산이라 남의 돈 끌어다 펀드 한 사람은 아귀 같은 빚 독촉에 낮에도 악몽을 꾸게 생겼다. 인간답게 살기도 어렵고 시속 따라 살기도 어렵다.
처음에 사람들은 저축 금리보다 나아서 펀드를 했다. 그건 거의 예금 적금이어서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지 않았고 은행(!)도 그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막대한 수익률에 들떠 ‘저지른’ 축은 리스크를 희망에 의거해 산정했다. 저축-투자-투기-도박으로의 가파른 길을 가게 한 것은 불경기에 저 홀로 잘나가는 척한 금융자본의 섹시한 유혹과 먹든 굶든 각자 알아서 살라는 자유주의 국가의 불호령이었으리.
돈 번 사람은 능력 있다, 인정받았다. 남들 고단하게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타고 단숨에 비약한 ‘난 놈’이다. 경제신문 열독하고 시장 정보에 민활하여 월등한 수익률을 올린 ‘똑똑한 놈’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사회적 구실을 잘할 테니 ‘된 놈’ 되는 것도 따 논 당상이다. 뭐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랬는데 이건 또 얼마나 선진적인 돈벌이인가. 하루 두어 시간 ‘컴퓨터’하고 ‘장미희’스럽게 놀 수 있다. 좀 사는 동네 애들 장래 희망이 부모 재산 관리하며 노는 것이라던데, 실로 ‘투자가’는 만인의 꿈으로 회자되었다. 도박의 멘탈리티(심리)라고나 할까.
다들 뛰어들었다. 주인 없는 노다지를 먼저 못 주워 먹으면 바보라는 듯 아무 심리적 부담 없이. 이제 상식과 기본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노동계급 영웅은 전태일이나 스타하노프가 아니라 존 레넌이고 마이클 조든이다. 노동은 소외된 노동이어서 자아실현과 별 상관없고, 혹은 꼬드김과 협박 속에 몸 부서지게 자기 효용성을 증명하는 충성 행위이니 몇몇 운 좋은 이는 음악이든 농구든 창의적인 일을 탁월하게 즐겁게 하면서 돈도 버는 행복한 해결책이 있지만 대부분은 일을 되도록 적게 하고 여가 활동에 마음을 붙이려 할 수밖에 없다. 그때 불로소득의 전망은 환상적 해결일 수 있다. 일하고 싶대도 잘 시켜주지도 않으니.
마르크스 이전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조차 모든 가치의 원천은 인간 노동이라 했다. 분배는 한 시점에서 제로섬 게임이고 불로소득은 남이 생산한 가치를 이전하는 것이니 결국 남의 것을 갖는 행위다. 어디 주인 없는 돈 선의의 경쟁으로 주워 먹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자고로 불로소득은 많은 세금으로 사회적 유용성을 증명해야 했다. 땀 흘려 한 땀 한 땀 살아가는 모습은 추앙받을지언정 추종되지는 않는다. 깜냥대로 일해서 먹고살게 보장된 사회도 아니다. 그렇다고 노동의 가치를 조롱하고 일하는 이들을 무시하면서 쉽고 영악하게 돈 따는 것을 대단한 능력인 양 추어주고 분발시켜야 되겠는가.
‘국가의 귀환’이네 미국 자본주의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네들 한다. 미국 정부의 행위는 자본의 이어달리기 전략으로, 사세 유리할 때는 놔먹여 엄청 벌게 하고 불리하면 개입해 자기 손실을 만인에게 공유시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많이 들어먹고 이번엔 한 나라 국민총생산(GNP) 규모의 세금을 거대 금융자본 살리는 데 퍼붓는 ‘신자유주의자’ 부시는 별로 신조를 바꾼 게 아니다. 여하간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유지비’가 제일 많이 드는 대통령이라던데, 우리 대통령은 얼마나 비싼 값을 하려고 이 시국에 금융 선진화를 추진하는지. 선진 금융이 나라 말아먹게 생기면 그제야 나타나 “I am back” 외치고 싶나?
김미영/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