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정/미술평론가
야!한국사회
“감기를 예방, 치료한다고 선전되는 약은 수없이 많은데, 대부분은 돈지갑을 가볍게 하는 효과 외에는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다.” 1970년 미국의 저명한 화학자가 저서 <비타민C와 감기>에 쓴 지문이다. 덧붙여 그는 의학 문헌에 감기를 완전히 치료하는 방법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고도 소개해 놨다. 이 책의 저자는 평생 노벨상을 무려 2회나 수상(1954년 화학상, 1962년 평화상)한 라이너스 폴링이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요즘 사정은 개선되었을까? 치료제를 표방하고 쏟아지는 약과 제약사의 광고는 늘었지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을 따르건 혹은 ‘상식’에 따라 답하건, 변종 바이러스가 발병 요인인 감기에 대해 엄밀한 의미의 치료제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올 초반과 찌는 여름이던 중반에 각각 한 달 이상을 끄는 감기로 몸져눕고 말았다. ‘여타 질병을 앓는 횟수의 총합보다 더 자주 걸린다’는 이 흔해 빠진 질병의 속성 때문에, 괴로움을 호소하자니 왠지 엄살 같기만 했다. 의학, 약학에 평소 무심하게 지내던 내가 작심하고 도서관을 찾아 먼지 쌓인 고서를 읽은 사연이기도 하다. 물론 환자의 호소를 접수하는 곳은 있다. 바로 병원이다. 하지만 여섯 차례나 내원하고도 차도가 없어 급기야 항생제까지 처방받았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얻지 못해 결국 무력감과 우울 증세마저 찾아왔다.
그러다가 매체 보도로 언젠가 접한, 젊은 의사 둘이 운영하는 카페를 겸한 병원에 갔다. 이곳은 대체의학이나 민간요법으로 만병통치를 자랑하는 ‘기이한 병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상식에 충실하려는 철학을 표방한다. 환자에게 앓고 있는 질병의 실체를 충분히 해설한다는 면에서는 진료보다 한편의 ‘강의’ 같기까지 하다. 감기약이 결코 치료제가 아님을 연거푸 강조한 상담 시간만 무려 50분이다. 흰색 가운조차 걸치지 않은 평상복 차림 의사에게서 병원 고유의 정형화된 ‘전문주의 아우라’를 느낄 순 없을 것이다. 만일 의사 아우라를 통해 안도감을 얻을 심산인 환자라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우는 약 처방전보다는 자신감을 얻어 그 병원(혹은 카페) 문을 나왔고, 그 점이 몹시 만족스러웠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간 곳이 제도 의학계 전체를 대체할 대안이라 우기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감기’라는 일상적 질병에 대한 접근법을 보면서, 우리를 둘러싼 과장된 질병 공포나 약물 과용, 기계화된 진단 및 처방 문화에 대해 한번쯤 깊게 성찰하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기엔 충분하다고 느꼈다. 우리가 상시 체험하는 내원과 진료의 요체란 대충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 줄지어 앉은 소파에서 호출받아 진료실로 입장. “그렇군요. 그럼 일단 약 3일치 지어 드릴게요. 나가실 때 주사 한대 맞으시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상호 기대심리가 만든 주사 처방 남용도 필히 반성되어야 할 것 같다. (1920, 30년대 시카고 암흑가를 지배한 갱스터 거물 알 카포네의 사망 원인은 그가 주사를 두려워한 나머지 매독 치료를 적절히 받지 못해서라 전해질 정도니, 일반인의 주사 공포감은 결코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폴링의 조언, 업계 관계자의 고백, 또 내가 찾은 병원 의사의 상세한 해설을 종합하건대 감기란 평소 수분 섭취, 비타민C 복용, 위생관리, 끝으로 충분한 휴식을 통해 충분히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제 문제가 해결된 것 같다. 그렇지만 … 결정적으로 미제로 남는 게 있다. 환자들의 볼멘소리가 말해주듯 현대 사회와 세속 도시의 낮과 밤이 ‘예비’ 환자들에게서 좀체 쉴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반이정/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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