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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 / 박수정

등록 2008-10-06 21:23

박수정 르포작가
박수정 르포작가
야!한국사회
충남 서산에 대기업 완성차 공장이 들어설 때 주민들은 기뻤다. 지역 경제도 살고, 일자리도 늘어나리라 기대했다. 그 회사에 취직한 노동자들은 어깨를 쫙 폈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대접해주리라 믿고 자부심을 품었다. 어떤 이의 먼 고향 마을에선 축하 펼침막을 걸었다. 대기업 노동자가 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보다는 아들을 취직시켜준 대기업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펼침막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그토록 순진한 사람들이니까.

하루 10시간 주야 맞교대, 아침이든 저녁이든 8시에 공장으로 들어간 노동자들은 다시 8시가 되어 나온다. 라인 설비가 완전 자동은 아니라 작업한 물량을 일일이 지게차에 실어 다음 공정으로 넘기는 작업도 만만찮은데, 다른 자동차공장에서 한 사람이 볼트 둘을 박을 때 여기 노동자들은 네 개 넘게 박는다. 작업 첫 ‘타임’, 두 시간 일이 끝나면 벌써 작업복과 속옷이 땀으로 흥건하다. 힘깨나 쓰는 남성 노동자도 고개를 내두른다. 여성 노동자들은 목·어깨·팔·발목에 파스를 붙이고 손목에 압박붕대를 감고 일한다. 밤에 일하는 주면 다들 한번씩 병원을 찾는다. 교대근무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도 흔하다. 하루 자동차 300여대를 만들면서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몸은 기계가 되고 머리는 멍해진다. 그렇게 진을 빼고 일해 받는 돈이 시급 3770원, 딱 최저임금이다. 3년차가 3900원이다. 신입자들은 첫날 한 타임을 돌고는 10분 쉬는 시간에 그대로 집으로 내빼기도 한다. 아무도 뭐라 않는다. 삶이 발목 잡지 않는다면 언제든 도망치고 싶은 현장이다.

이들은 대기업 자동차를 만들지만 대기업 노동자가 아니다. 대기업과 하청을 맺은 회사, 그 회사에서 다시 하청을 맺은 사내 하청업체의 1년 계약직 노동자다. 생산직 850명이 이름이 다른 하청에 나뉘어 한 회사 일을 한다. 이 회사는 업체 폐업과 계약 해지가 무척 자유롭다. 해마다 연말 무렵엔 어느 업체가 폐업될지 소문이 돌고 곧 폐업 예정 통보서가 게시판에 붙는다. 사장과 회사 이름이 바뀐다. 일대일 면담을 통해 새로 계약을 하면서 예닐곱 명이 이유 없이 쫓겨난다. 평소 입바른 소리를 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걸러진다. 남은 이는 모두 1월3일자 신입사원이 된다. 그이들은, 억울하게 쫓겨난 동료를 위해 말 한마디 못하고 아무런 행동도 못한 부끄러움으로 괴롭다. 사람들 사이, 신뢰감은 와장창 깨져버린다. 원청회사는 폐업과 계약 해지를 반복하면서 하청업체를 길들이고 노동자를 주눅 들게 한다. 노동자의 ‘권리’ 따위로 자본의 ‘무한질주’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 만든 고용구조, 노무관리다.

대기업 자동차를 만든다고 자랑스러웠던 건 들어가는 순간뿐, 이젠 명절이면 친척들한테 “너 언제까지 다닐래?” 소리를 듣는다. 뭐 좋은 본보기라고 근처 회사들이 죄다 이 회사 고용구조를 따라해 어딜 가든 다르지 않다. 기아자동차 모닝을 만드는 동희오토. ‘여해추’(여기 해고자 한 명 추가요)가 자장면 하나 추가처럼 쉬운 회사, 일하는 사람이 자부심도 자존심도 세울 수 없는 회사가 과연 ….

빛깔도 곱고 다양한 모닝이 공장을 빠져나가고, 그 자동차를 만들러 노동자들이 출근하는 쌀쌀한 아침,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 징계해고를 당한 이들이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 만들 때까지 이곳에 오겠다”고 외친다. 해고자를 보는 다른 노동자들이 “삶의 여건과 마음의 간격”을 영(0)으로 만드는 날이 언젠간 오리라. 왜? 우리는 그토록 사람답게 살고 싶으니까.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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