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야!한국사회
지방캠퍼스 강의차 기차와 택시를 자주 탄다. 어떻게 움직이든 절대거리보다 이동시간이 중요하다. 케이티엑스로 가는 대구와 무궁화호로 가는 조치원은 ‘테크놀로지 거리’가 비슷하다. 사회적 거리도 그렇다. 생전 가야 얼굴 한 번 못 보는 옆집보다 수시로 화상통화하는 외국지사가 가깝다. 그래서 현대인이 사는 세상이 넓어졌나?
접촉하는 사람이 엄청 많아진 것은 맞다. 그러나 그들 대다수는 우연히 한 공간을 점한 타인들이라 ‘예의 바른 무관심’이 요구될 뿐이고, 아니면 가벼운 실용적 관련만 하면 된다. 한편 이성과 감정이 투여되는 관계는 일차적으로 계급, 그리고 인종 민족, 젠더와 섹슈얼리티, 취향으로 구획된 좁은 세계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협소함은 폴 비릴리오가 ‘텔레프록시티’(전자매체로 인한 근접성)라 한 것으로 보정되어 가려진다. 세상은 돈의 전횡으로 갈가리 찢기는데 반복 노출로 친숙해진 이미지는 물신화된 다양성과 공허한 사해동포주의로 위무한다.
진짜로 사람들의 사회적 공간이 넓어지려면 만나는 사람들이 여러 계층의 다양한 이어야 한다. 그리고 (게이 친구 하나쯤 있어야지 식의 수집욕이 아니라) 서로 부딪혀 다른 소리를 내고 듣고 변해야 한다. 이왕 버린 몸 요대로 살다 죽을래 결심했다면 모를까, 그래야 시각도 좀 넓어지고 성격도 좀 성숙되고 취향도 계발되지 않겠나.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래 알아 익숙하고 편한 사람끼리 동창회, 향우회, 종교모임, 친목회 등만 할 뿐 정당이나 시민단체 활동은 지지부진하다. 즉 공적이어야 할 시민사회 영역에 확대가족, ‘혈육(같은)’집단만 있을 뿐이다. 철학자 김영민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타인의 존재를 알고 받아들임이라 했다. 남이 두려워 (유사)가족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는 똥을 싸도 예뻐하는 엄마 품에 안겨 자신이 완전무결 전지전능하다고 상상하는 유아들이다.
그 정신적 유아들이 힘까지 쥐면 한 집안 우환이 나라 우환으로 된다. ‘남’은 낯설어 불편하고 그의 다름이 이해 안 돼 해코지로만 보이고 그의 비판이 딴지 걸기로 귀찮아 죽겠는 자들이, 저희끼리 쑥덕대 법을 만들고 세금을 없애고 낙하산을 양산하고 ‘격려금’ 주고받으면(격려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 주는 것 아닌가?), 싫어도 그 영향권 안에 있는 ‘님’ 아닌 사람들 살기 고달파진다. 독재정권도 자기이익을 보편이익으로 치장하려 애쓰는데 동종교배로 멍청해진 유아들은 그것도 안 한다.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의원이 달러모으기 운동을 제안했단다. 모친의 각별한 모성애로 유명한 한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개인적으로 집에 달러 동전이 오백달러 정도 있는데, 범국민적으로 달러 모으기 행사를 진행하는 게 어떠냐” 했다.(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지는 이해하고 필요성에 동의한다 했다) 동전 세느라 힘드셨겠다. 오해 마시라. 달러 많다고 욕하는 거 아니다. 그 ‘개인’에겐 텔레비전으로 익숙한 외국여행 풍경과 자신들이 철철이 다니는 외국여행이 리얼리티의 전부인 거 같은데, 다른 현실도 좀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 하는 남편이 작년에 전사원과 삼박사일 초저가 중국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것이 첫 외국여행인 이가 절반이더라고, 평소 자기가 일용직 노동자부터 재벌까지 최고로 광범한 스펙트럼을 접한다고 자랑하던 그로서도 놀라고 반성하며 전한 바다. ‘코딱지만 한’ 중소기업이지만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는 이들이 이럴진대, 그만 못한 많은 이들은 어떨까. 나르시스적 재롱잔치 멈추고 남들도 엄마처럼 웃고 있나 눈치 좀 봐라. 왜냐고? “남이 바글바글한 세상이니까.(<완득이>)”
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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