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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소희, 윤아, 연아 / 반이정

등록 2008-10-20 20:00

반이정 미술평론가
반이정 미술평론가
야!한국사회
하필 초지일관 어린 소녀의 성적 호감에 매달린 어느 50대 남성 미술인을 나는 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탄탄한 경력 덕에 그는 주류 전시장에서 종종 초대받거나, 민감한 주제를 찾는 매스미디어의 취재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동일한 이유로 비주류로 분류된다. 공론의 장에 내놓자니, 화단 정서로도 부담스런 주제였던 거다. 보기에 따라 미학적으로 그와 정반대에 놓일 법한, 여성주의 미술의 성정치 미학에서 심도가 느껴지는 것처럼, 나는 그의 작품에서도 진정성을 읽는다. 거친 묘사이지만 나의 내면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작품에서 자기 동일성이 발견되어서일 게다. 나이 어린 여자만의 고유한 매력은 서구의 거물급 예술인들이 반복적으로 다뤄 왔고, 나 역시 그 점을 애써 부인하거나 뿌리치지 못하며,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건 윤리학적 쟁점보다는 생물학적 조건반사의 문제에 가깝다.

지난 3주 전 국내 빅뉴스는 5인조 소녀그룹 ‘원더걸스’의 컴백이었다. 1960, 70년대 모타운풍 이브닝드레스와 뱅헤어를 쫓았다 하여 복고풍이 주제어로 떠올랐다. 그러나 더 멀리 전신을 찾으면 20, 30년대 시카고 클럽걸까지 고려될 게다. 복고는 맞지만 먼 선배들의 전략은 섹스어필이었다. 유교 가치가 확고부동한 동아시아에서 고작 10대 소녀그룹이 의자춤까지 동원해 대놓고 섹스어필을 계승하다니 세상 참 변했다. 하지만 소녀들의 과감한 컴백을 보도하는 숱한 기사는 예상대로 ‘얌전한’ 표현 수위에 머문다. 어디 이뿐인가? 경쟁 관계인 9인조 소녀그룹 ‘소녀시대’는 “소녀들이 평정할 시대가 왔다”의 준말이라는데(진작 평정됐건만) ‘소녀시대’의 전략도 하얀색과 연분홍 일색인 의상, 단화 차림에 앞가르마 탄 긴 생머리에 더해 율동에 따라 사타구니가 노출될 법한 스커트 길이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따져보면 작위적 청순미와 키치적 섹스 상술이 혼재되어 있다. 그래서 아저씨들이 눈 뗄 수 없다는 거! 두 라이벌 소녀그룹의 간판스타는 팀 내 최연소에 가까운 소희와 윤아인데, 이들 역시 성적 매력과 연관시킨 기사나 덧글을 찾기 어렵다. 표현 수위에 대한 이런 대동단결은 어떤 합의 때문일까? 이들이 청순미만으로 이 자리까지 오른 건 필시 아닐 터. 이 현상은 윤아와 동갑내기 스포츠 스타 (김)연아에도 적용된다. 밀착된 유니폼이 드러낸 소녀의 곡선미는 피겨 스케이팅의 본질인 곡예의 감동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이들은 더는 ‘저스트 어 걸’(김연아가 갈라쇼에서 반주로 트는 노래)이 아니다. 소희, 윤아, 연아 모두 성적 매력을 코드로 삼는 숱한 선배들보다 여러 면에서 이미 능가하고 있지만 굳이 ‘귀여운’ 섹시함이라 조심스레 칭찬하는 걸 보노라면 안쓰러울 정도다. 왜 저렇듯 번거로운 수식어의 양해가 필요했을까? 미성년자의 성적 매력은 발설조차 해선 안 되는 걸까? 한국 사회의 뒤틀린 성윤리의 억압이 이들을 ‘국민 여동생’처럼 작위적으로 호칭하도록 조장하는 건 아닐까? 20대만의 매력을 표현하는 것과 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간주하는 걸 혼동하는 건 왜일까?

1920년대 식민 조선의 시공간 안에 등장한 ‘신여성’이 미완의 근대성 아이콘으로 독해되듯 서구와 문화적 시차가 거의 극복된 2000년대 남한의 ‘소녀’들도 여태 미완의 성윤리와 처치곤란 상태의 욕망 사이에서 어정쩡한 정체성을 제공받는다. 20년대 신여성에게는 근대적 사유와 전근대적 도덕이 함께 요구된바, 이런 모순된 현상의 배후에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근대 남성의 지상명제가 놓였다나. 웃겨 정말.

반이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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