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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고교선택제로 예체능계 구원하자 / 이범

등록 2008-11-03 20:41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야!한국사회
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전반적으로 비판하지만, 2010학년도부터 서울에 도입될 예정인 ‘고교 선택제’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물론 내가 만나본 진보적 교육운동가들은 대체로 나의 입장에 반대하는데, 내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 곧 말문을 닫곤 한다 . “예체능계는 어떻게 할 겁니까?”

현재 대학의 예체능계 정원은 전체의 15%에 이른다. 하지만 예체능계 고등학교 정원은 1.5%에 불과하다. 예체능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데 실패했거나, 뒤늦게 예체능 전공을 고려하게 된 학생들은 대체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밤늦게 학원을 전전한다. 그런데 학교 선택제를 조금만 정교화해 가면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는 디자인 전공 특별반을 세 학급 운영합니다”는 식으로 미리 공지하고, 디자인을 전공하려는 학생은 이러한 특별반을 운영하는 고교로 1, 2, 3지망을 써 내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안정적인 예체능계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당장 사교육비가 꽤 줄어들 것이고, 학교교육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다.

학교교육의 다양화는 ‘학교내 다양화’와 ‘학교간 다양화’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이 신장되면 그 귀결로 학교내 교육과정과 특별활동, 학생 자치활동 등의 다양화가 진전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학교내 다양화’에는 나와 지향을 같이하면서도 ‘학교간 다양화’에는 거부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다. 아마도 ‘학교간 다양화’를 섣불리 허용했다간 고교 서열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인 ‘학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가 일반 공립학교의 자율성을 넓히기 위한 조처는 매우 부족한 가운데 일부 사립학교(자율형 사립고)에만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부여하려는 기형적인 발상이기에, 그 반감도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문계와 전문계(실업계)로 일차적인 ‘학교간 다양화’가 이뤄져 있는 상황이다. 전문계 고등학교에는 높은 수준의 ‘학교간 다양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유독 인문계 고등학교가 추가로 분화되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문학문필 특별반’이나 ‘패션디자인 특별반’ 같은 프로그램이 모든 고등학교에 자리잡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결국 ‘학교내 다양화’와 ‘학교간 다양화’ 양쪽 모두 허용하면서 학교의 책무성을 높이고 사교육비 절감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현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귀결이 이러한 나의 생각과 별로 합치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학생들이 지망 고등학교를 결정할 때 부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이고, 부모는 앞으로 공개될 학교별 학업성취도 결과나 명문대 진학실적을 기준으로 학교를 고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예체능계 대학에도 나름대로 서열이 있기에,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사교육 수요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홍대 앞에 불야성을 이룬 유흥가 사이사이로, 앞치마를 두른 채 미술학원 건물을 들락거리는 피곤한 얼굴의 고딩들을 보라. 우리나라의 진보적 교육운동가들이, 예체능계 진학을 고려하는 순간부터 학원부터 알아봐야 하는 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진지하게 상담해 본 적이 있을까? 거창한 거대담론을 들먹이기 이전에, 이들의 피로를 경감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학생들을 위해 경박한 정부와 이기적인 대학, 편협한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면, 기꺼이 줄타기를 해야 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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