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한 탐험가가 2003년 4월26일 미국 유타주에 있는 블루존 협곡을 등반하다 바위가 내려앉아 오른팔이 바위 밑에 끼였다. 나흘이 지나자 식량과 물이 떨어졌다. 구조대가 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는 절망과 공포 속에 하루를 더 버틴 뒤 결단을 내렸다. 팔을 비틀어 부러뜨리고 다용도 칼로 자신의 손목을 잘라내 바위에서 벗어났다. 아론 랠스턴이란 사람 이야기다.
죽음이나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작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운이 좋으면 고통을 피할 수도 있으리란 미련의 힘은 세다. 이해가 다른 사람들이 힘을 합쳐 사태를 극복해야 할 경우엔 더욱 힘겹다. 요즘 우리 경제상황도 비슷하다.
신용위기가 퍼지면서, 지난 2003~2004년 신용카드 위기 당시 활약했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남긴 ‘한국의 금융위기 극복과정과 교훈’이란 보고서가 다시 관심을 끈다. 보고서가 강조한 위기 해결 원칙은 “확실하게 손실을 분담(Loss allocation)하고, 위기가 다른 곳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라(Damage control)”는 것이었다. “회생이 불가능한 경우 청산하고, 그 손실을 주주, 채권자, 상거래 관련자, 정부 차례로 배분하라. 재무적 곤경에 처했지만 회생이 가능한 경우엔 자금을 지원해 주는 대신 자구노력을 하게 하라.” “좋은 사과와 나쁜 사과를 신속히 분리하라. 섞여 있으면 좋은 사과도 의심받는다.”
난파한 배의 선장은 몇 안 되는 구명정에 일부 승객만 태워야 한다. 저항이 따른다.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서도 뒷발 선장을 고발해 다친 양심을 달래려는 이들이 나온다. 그래도 선장은 결단해야 한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 처지도 난파선 선장과 비슷하다. 우리 정부는 ‘우리 경제엔 썩은 사과가 없다’는 듯 느긋하니, 그게 참 걱정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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