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1879년 12월 에디슨이 미국에서 특허를 내기 이전 무려 23명의 과학자나 발명가가 백열전구 개발에 성공했다. 최초의 백열등은 1802년 영국의 험프리 데이비가 발명했다. 실험실의 성공이었지만, 전기로 불을 밝힐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렸다.
그 후 전구의 실용화를 위한 과학자들의 치열한 경쟁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다. 1840년 워런 루(영국)가 진공관 속에 백금(플래티넘) 필라멘트를 넣는 방식의 전구를 개발했지만, 백금 값이 비싸 상용화할 엄두를 못 냈다. 이듬해인 1841년에는 프레더릭 몰레인(영국)이 최초의 백열등 특허를 획득했으며, 1845년에는 존 스타(미국)가 탄소 필라멘트를 사용해 특허를 얻었다.
백열등 상용화를 앞당긴 이는 영국의 조지프 윌슨 스완과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이다. 스완이 1878년 뉴캐슬에서 수명과 밝기가 대폭 개선된 탄소 필라멘트 전등을 선보이면서 한발 앞섰지만, 상업적으로는 에디슨이 우세했다. 에디슨의 성공 뒤에는 숱한 땀방울이 있었다. 그는 최적의 필라멘트 재료를 찾고자 비단과 목탄, 삼, 심지어는 회사 직원의 턱수염 등으로 수천 번의 실험을 거듭했으며, 결국 탄화 대나무(1200시간)를 찾아냈다. 이 밖에 성능이 뛰어난 발전기와 코팅된 전선, 전력계, 안전 퓨즈, 소켓 등 관련 제품을 함께 세상에 내놓았던 것도 성공 비결이다.
백열등이 각 나라에서 퇴출당하고 있다. 유럽연합(2012년)과 오스트레일리아(2013년)에 이어 우리 정부도 2013년까지 백열전구를 퇴출시키기로 했다. 개량을 많이 했는데도 백열등의 에너지 효율이 여전히 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에 따라 백열등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지만, 과학자들이 흘린 땀방울은 백열등의 불빛처럼 뜨겁게 기억될 것이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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