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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몰로토프 칵테일 / 김종철

등록 2009-01-27 19:22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1939년 겨울 소련군은 120만명의 대군을 앞세워 16만 병력의 핀란드를 침공했다. 월등하게 우세한 전력인데도 소련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붉은 군대의 숙련된 간부에 대한 스탈린의 숙청으로 말미암은 지휘력과 사기 저하 등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스키 부대의 기습 공격 등 핀란드군의 독특한 전술도 한몫했다.

특히 소련군 탱크에 대한 화염병 공격은 눈부신 전과를 거뒀다. 이 아이디어는 스페인 내전에서 얻었다. 1936년 쿠데타를 일으킨 스페인의 프랑코 군대가 공화파를 돕고자 출전했던 소련군 탱크에 화염병을 던져 많은 성과를 거둔 데 착안해서 핀란드군은 이를 정식 무기로 채택했다.

핀란드군은 이 재래무기에 ‘몰로토프 칵테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몰로토프 브레드 바스켓’(빵 바구니)에서 따왔다. 당시 소련 외무장관이던 바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몰로토프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공중 폭격을 부인하면서 “폭탄이 아니라 굶주리는 핀란드인들을 위한 빵”이라고 말했다. 이에 핀란드인들은 소련군의 폭탄을 ‘몰로토프 브레드 바스켓’이라고 비꼬아 불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차의 장갑이 두꺼워지고 성능이 개량됨에 따라 전장에서는 몰로토프 칵테일이 거의 사라졌다. 대신 프라하 사건(1968년)과 1970년대의 북아일랜드 분리운동, 로스앤젤레스 폭동(1992년), 팔레스타인 사태 등과 같은 분쟁이나 분규 때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용산 참사와 관련해 철거민 5명이 화염병 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당국은 화염병이 2년여 만에 다시 등장한 사실에 크게 당황한 듯하다. 하지만, 엄한 처벌을 외친다고 화염병이 사라질까. 이들이 왜 불법적인 위험 물질에 다시 의존하는지에 대한 근본 고민부터 해야 한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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