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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차라리, 국민등급제를 실시하라 / 김현진

등록 2009-02-02 20:58

김현진/에세이스트
김현진/에세이스트
야!한국사회
나는 얼마 전까지 서울 성동구 옥수 제12구역 철거민 세입자였다. 길고 지루한 회사 생활을 하며 어찌어찌 모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지은 지 20년이 훨씬 넘어 초라하고 군데군데 무너져 가기까지 하는 그 전세방을 얻었다. 하지만 매달 생살을 떼어 남의 손에 넘기듯 타격이 크던 월세가 굳는다는 생각을 하면 초라하기는커녕 궁궐이 부럽지 않았다. 숨을 씩씩대면서 장딴지가 아프도록 올라가야 하는 산꼭대기였지만 방에서 창문을 열면 고개를 내밀 것도 없이 바로 동호대교의 휘황한 불빛이 텔레비전 화면처럼 펼쳐져 매일 등산하는 수고도 그리 싫을 것 없었다. 하지만 2년 계약 중 불과 10개월 정도를 살고 나서, 철거 명령이 떨어졌다. 별수 없이 몇 안 되는 짐을 주섬주섬 쌌다.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이삿짐 트럭이 출발할 때 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잠시나마 나를 품어 주었던 그 집이 있던 자리에는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며, 특히 잠깐 내 방이었던 곳처럼 그렇게 한강이 잘 보이는 자리에 살게 되는 사람들은 조망권 가격을 따로 치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사한 곳 역시 재개발 지역이었다. 그 돈에 맞춰 살자니 방법이 없었다. 먼젓번에도 그랬듯이 전세 계약을 하면서 계약서에 따로 명시된 사항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철거에 따른 이전 명령이 따라올 경우 세입자는 일체의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별수 없었다. 이 가격에 전세가 있는 줄 아느냐는 집주인과 부동산의 설명도 저번과 다르지 않았다. 온통 뉴타운, 뉴타운 하고 광풍이 몰아치는 이곳에서 죽어도 올드타운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가난한 주머니 사정으로는 그냥 말없이 도장을 찍을 수밖에.

잠깐 몸만 들어왔다가 몸만 나가는 거나 다름없는 방을 떠나는 것만 해도 그렇게 마음이 아팠는데 하물며 살아보겠다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피 같은 생돈을 몇 천 몇 억씩 쏟아 부어 몇 년, 혹은 몇 십 년 동안 삶의 터전을 일구어 보려고 애썼던 용산 철거민들의 고통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밤 추위에도 불구하고 용산 제4구역 철거민 깃발을 들고 매일 추모제를 지키던 반백의 어르신은 “아이, 힘들어 죽갔다 …”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 말대로, 죽을 정도로 힘든 세상이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도,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야말로 힘들어 죽은 것이다.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다가 힘들어 죽고, 폭력 진압 앞에 별수 없어 힘들어 죽고, 화마 앞에서 도망치지 못해 힘들어 죽고, 난간에 매달려 보다가 힘들어 죽고 ….

이렇게 국민이 힘들어 죽겠다 못해 정말 죽어버리는 나라에서 과연 힘들어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역시 정부의 방침은 초지일관이다. “힘드냐? 참아라.” 지금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그렇게 딱 두 가지뿐이다. 참거나, 혹은 죽는 것. 그러면서 그들은 속삭인다. ‘부∼자 되세요.’ 그러면 그런 취급 받지 않을 테니까. 철거도 폭력도 없을 것이고, 고의 방화니 도심 테러니 하고 두 번 세 번 죽는 일도 없을 테니까.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고 자신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만큼 영악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카스트 제도처럼 아예 국민등급제라도 시작해서 없는 사람들을 막 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겉으로 국민 여러분을 위해 어쩌고, 하는 거라도 그만둔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역겹지는 않겠다.

김현진/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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