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르포작가
야!한국사회
사진 한 장을 본다. 앉은 부부 뒤로 군인이 된 큰아들과 고등학생이 된 작은아들이 섰다. 모두 환하게 웃는다. 지난해 4월, 처음 찍은 ‘가족사진’. 아들 면회를 갔더니 손바닥만한 사진을 찍어주었다.
강원도가 고향인 부부가 신접살림을 시작한 곳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신동이다. 마을이 크지는 않아도 가구 수가 많았다. 쪽방 집이었지만 아들 둘을 낳아 살면서 두 사람은 행복했다. 남자는 근처 공장에서, 여자는 부업거리를 가져다 집에서 일했다. 방을 넓혀 이사하면서 한 마을에서 22년을 살았다. 이들에게 신동은 ‘고향’이다. “뿌리내리고 산” 곳, 두 아들이 맘 놓고 뛰어다니면서 놀고 자란 추억이 고스란히 남은 곳이다. 더 좋은 집, 아파트도 부럽지 않았다. 아들은 친구가 사는 아파트에 놀러가도 기죽지 않았다. “우리 집이 더 좋다”고 했다. 가끔 남자는 여자에게 “남들은 집 장만하는데”라며 미안해했다. 그러면 여자는 “집 갖고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 가난해도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면 되지 않느냐. 그런 것에 미련 두지 말자”고 했다. 내 집이나 돈이 없어도 이들은 단란하게 지냈다. 조금이라도 더 아이들과 눈 마주보며 이야기 나누려고 애썼다. 여자는 “없이 살아도 서로 나누고 의지하고 살라”고, “공부를 해서 많은 걸 배워 남들을 도와주라”고 자식들에게 말하곤 했다. “배움이 부족하고 살기가 어려웠어도” 부부는 “안된 사람”을 보면 안쓰러워하고 도와주었다. 두 아들은 자연스레 그런 부모를 닮았다. “엄마 아빠가 최고”였다. 둘째는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책을 쓰게 되면 아빠 이야기를 쓸 거라고 했단다.
그런데 도시개발 사업으로 이들은 20년 넘게 살아온 땅·집·고향에서 쫓겨날 판이다. ‘쾌적한 도시환경’을 만들고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공공복리 증진’에 기여한다는 개발사업이지만 세입자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없이 사는 사람들인데” 아무런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토지수용 조건으로 세입자를 내보내라고 해 어떤 집주인은 직접 집을 헐어 세입자를 쫓아냈단다. 사람들은 철거민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고향을, 고향과 같은 곳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남자도 그 일에 참여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찾아다녀 보니 개발을 앞세워 삶터나 일터에서 사람들을 쫓아내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지역은 달라도 철거민이 된 사람들이 서로 도왔다. 지난 1월18일 저녁을 먹고 남자는 “나 나갔다 올게”라며 집을 나섰다. 서울 용산, 옥상 망루에 올랐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고, 자신들이 겪는 어려움에도 다른 이들이 함께했으니. 망루에 오르면서 무엇을 바랐을까. 철거민이 된 남자는 집보다 먼저, 앞으로 철거될 집보다 가혹하게 1월20일 아침에 이 세상에서 철거당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제 검찰은 죽고 다친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미뤘다.
처음 찍은 가족사진은 유일한 가족사진이 되었다. 사진 속 얼굴이 영정이 되었다. 고인이 된 한대성씨의 아내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 “애들도 지금 무척 아빠를 그리워합니다. 살아서 나갔는데 이렇게 죽음으로 와 상처가 엄청납니다. 없는 사람이 많지 잘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거의 다 없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다 이렇게 만들면 되는 건가요? 이런 일을 또 만들면 안 된다 생각해요.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당신들이 이렇게까지 막 없는 사람 아주 깔아뭉개고 누르는데, 그럼 밟히면 또 일어나야지요.”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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