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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칼럼] ‘먹튀’들의 행진

등록 2009-02-17 20:46수정 2009-02-18 11:35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칼럼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이 다가온다. ‘아니, 벌써 1년이 지났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이쿠, 아직도 4년이나 남았네!’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명박 대통령은 왜 헤매는 것일까? 지난 1년을 되짚어 원인을 찾아보자.

첫째,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준비’가 부족했다. 특히 국정 운용 프로그램 자체를 거의 가지고 들어가지 않은 것 같다. 한나라당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우리는 ‘9회말 투 아웃 이후 역전패’를 당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지막까지 이기는 데 주력했다. 취임 이후 곧바로 쓸 수 있는 로드맵을 미리 만들 여유가 없었다.”

좀 한심하지만 솔직한 답변인 셈이다. 좋다. 이제부터라도 정책 프로그램을 잘 정비하면 좀 나아질 것이다.

둘째, 너무 서두르고 있다. 나라의 일은 정책 자체보다 절차가 더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송법 개정 등 ‘뜨거운 감자’를 겁도 없이 꿀꺽 삼키려 했다. 입을 데고 감자를 토해 냈다. 본래 뜨거운 감자는 얇게 잘라서 후후 불면서 먹어야 한다. 하긴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이라는 이름의 감자를 먹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어쨌든 뜨거운 맛을 봤을테니 앞으로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셋째, 이명박 대통령은 ‘사람’에서 실패하고 있다. 이 대목이 가장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사람’을 잘 써야 한다. 대통령에게 약점이 많아도 ‘사람’을 잘 쓰면 어느 정도 만회가 가능하다.

김영삼 대통령은 박관용 비서실장의 균형감각, 강삼재 사무총장의 충직함에 의존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동교동계’의 충성심, 임동원 수석의 전문성을 활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해찬 총리의 역량과 이호철 수석의 순수함에 기댔다. 각각의 대통령 재임 기간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정권을 지켰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지킴이’들이 잘 안 보인다.

청와대와 행정부에서 일하는 이 대통령의 측근들 중에는 ‘먹튀’들이 유난히 많다. 먹튀는 ‘먹고 튀었다’는 의미의 비속어다. 본래는 스포츠 리그에서 높은 연봉을 받기로 했지만 실력이 형편없는 선수를 말한다. 요즘 정치판에선 ‘자리’에만 관심이 있는 출세주의자를 뜻한다.


이명박 대통령 주변을 왜 ‘먹튀’들이 둘러싸고 있을까? 간단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본디 가치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다. 출세주의자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물론 ‘착한 참모’들도 꽤 있다. 하지만 힘을 쓰지 못한다. 이유가 있다.

먹튀들은 권모술수에 강하다. ‘착한 참모’들은 당해 낼 재간이 없다. 먹튀들은 ‘모시는 사람’에게 절대로 싫은소리를 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핵심이라고 자부하는 한 인사가 최근 작심을 하고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민심’을 보고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하나하나 반박 논리로 방어했다. 이 참모는 “절벽을 느꼈다”며 한숨을 쉬었다. 먹튀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조심해야 한다. 왜? 먹튀들은 언젠가 반드시 배신한다. 국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모시는 사람’에 대해 진정한 충성심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시던 사람’의 등에 칼을 꽂을지도 모른다.

그래서다. 이제 임기 4년을 남긴 이명박 대통령이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능력 있고 정직한 인재 몇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삼고초려해야 한다. 그들을 요직에 발탁하고 권한과 책임을 대폭 위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명박 대통령 혼자 힘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정권은 결국 사람이다.

성한용 선임기자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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