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끈질긴 투쟁 끝에 16세기 후반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네덜란드는 “신민을 노예처럼 대우하는 제후에게서는 일체의 지배권을 박탈할 수 있다”며 저항권을 세계 최초로 공식 인정했다. 정치적·종교적 자유를 찾는 사람들이 유럽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자유의 나라답게 네덜란드는 한때 ‘가짜 사형’이라는 독창적인 처벌을 실시했다. 고의가 아니거나 정황이 뚜렷하지 않은 살인 피의자 또는 심한 폭행죄를 저지른 사람이 가짜 사형의 대상이었다. 진짜와 똑같이 진행됐기에 당사자들은 정말로 죽임을 당하는 줄 알았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 그는 외무 공무원인 페트라솁스키가 주도한 독서모임에서 활동했다가 반체제 혐의로 검거됐다. 서유럽 자유주의 사조의 유입을 두려워했던 니콜라이 1세는 젊은 지식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고자 ‘훈육을 위한 일종의 연극’을 꾸몄다.
도스토옙스키는 1849년 12월22일 동료들과 함께 사형 집행대 앞에 섰다. 두 눈이 가려진 뒤 그에게는 마지막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때의 경험을 그는 “이 세상에서 숨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 데, 2분은 삶을 돌아보는 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 데 쓰고 싶다”고 장편소설 <백치>에서 묘사했다. 황제의 특사에 의해 사형 대신 시베리아 유배를 가는 것으로 연극은 끝났지만, 그는 “사형은 영혼에 대한 모독”임을 이때 깨달았다.
법무부가 최근 사형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다. 앞서 한나라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등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이후 여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사형 옹호론자들에게 모의 사형 체험이나마 하도록 권하고 싶다. 도스토옙스키만큼은 아니더라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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