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르포작가
야!한국사회
15년간 조그만 식당을 운영했다는 67살 할머니는 이제는 철거돼 없어진 ‘용산’으로 시작하는 식당 주소를 또박또박 말했다. 지난해 11월 어느 아침, 불쑥 집행관이 찾아왔다. 용역 200여명을 뒤에 달고. 명도 예정일이 24일이나 남았는데 어기고 철거를 한다 했다. 왜 규칙을 지키지 않는지 의문이 들어 “나름대로 힘을 주고 조리 있게 말”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 수를 상대할 힘이 없는 할머니는 집행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을 했다. “지금 두 시간만 있으면 제가 예약한 손님이 있으니까 그것만 봐주시면 그 뒤로 임의대로 하십시오.” 아, 도끼를 들고 식당을 부순다고 온 사람들 앞에서도 잊지 않은 약속이라니. 손님이 누군가와 했을 점심 약속을 지켜주고 싶었던 사람, 마지막으로 따뜻한 밥을 지어 허기를 채워주고 싶었던 마음은, 무시당했다. 그때 부탁한 두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이 집행관과 용역들에게 있었다면, 건설 재벌들이 티끌만큼이라도 할머니 깊은 속을 읽을 줄 알았다면, 저 1월의 ‘죽임’은 없었을까.
지난 2월,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철거용역폭력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재개발지역 주민들이 겪은 일을 말했다. 말에 공포가 스며 있었고, 핏빛이 났으며,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철거는 관리처분인가가 나야 시작된다는데 왕십리에서는 “법에 보장된 것도 주지 않으려고, 세입자가 자기 권리를 알기 전에 쫓아내려고 사업시행인가가 떨어지자 용역 깡패들이 동네에 상주해” 새벽·낮·밤을 가리지 않고 협박과 모욕, 폭력을 가했다 한다.
상도4동 한 주민은 “이 지역에 임대아파트를 지으면 살겠느냐 (서면으로) 물어, 그래도 없이 사는 사람한테 나라에서 임대아파트를 주는구나 싶어 희망을 갖고 살았”는데 갑작스레 철거를 당했다. “빈집도 많은데 설마 사람이 사는 집을 부수리라고는 생각” 안 했단다. “나가면 다시는 못 들어올 것 같아서” 방에서 버텼지만, 속옷 하나 챙기지 못하고 집은 부서졌다. 당장 애들이 있을 곳이 없어 텐트를 쳤건만 그마저 용역이 협박해 스스로 거둬야 했다. 재개발은 “가정을 파탄” 내는 일이었다. 그날 함께 있던 이웃 주민은 “용역들이 다른 집 옥상에 올라 항아리, 화분을 집어 던지는데 철거가 아니라 사람 철거하러 들어온 거다. 얼마나 많이 맞고, 심한 경우를 겪었는지 그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대책 없이 용역 들어왔다는 자체가 이 지역 사람들은 사람 취급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주거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옥상에 올라갔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고, 경찰 특공대와 용역 깡패 천 명 정도가 물대포를 끌고 달려왔다. 쇠몽둥이에 맞아 사람들이 갈비뼈가 나가고 머리를 다치고 엄청난 부상을 당했다. 경찰은 용역 깡패를 비호한다. 더 이상 공권력이 아니다.” ‘용역 깡패·경찰 특공대·물대포’를 2007년에 겪은 광명6동 주민들이 한 말이다.
앞서 할머니는 “1월19일, 무엇을 달라, 해 달라 그런 요구 조건 없이 살게 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하러 올라갔다. 우리 국민 다들 지성인이라고 생각한다. 잘 이해해주시고 우리 철거민의 애로사항을 잘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생계가 끊겨 호소하러 올라간 이들은 죽어 내려오거나 구속되고, 평범한 이들이 믿을 만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시간은 훌쩍 지나고 있다. 그런 채 다시 용산에서 철거가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가 전국 60여 지역에 더 추가될 거고, 서울에서만 재개발 299개·재건축 266개 구역이라는데, 우리는 여전히 이 폭력을 방조할 것인가.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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