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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우리의 아우성 / 김규항

등록 2009-03-11 18:56수정 2009-03-11 19:40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야!한국사회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렵다 아우성이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런데 아우성치는 우리는 정말 그렇게 하나같이 살기 어려운가? 그래서 우리 주변엔 여전히 음식 쓰레기가 차고 넘치며, 만나면 최신 다이어트 정보를 교환하는가? 우리의 아우성은 대체 얼마나 정당한가? 실마리를 얻기 위해 예수 이야기를 좀 해보자.

한 젊은 부자가 예수에게 다가와 말한다. “선생님,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는 부자에게 대답한다.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세요.” 얼굴을 붉히며 되돌아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예수는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 예수의 말은 짐짓 지나치게 느껴진다. 모든 부자가 다 악랄하고 탐욕스럽기만 하진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예수의 말은 지나침이 없다. 하느님 앞에선 누구든 차별 없이 귀하다. 빈부 격차는 그 자체로 악이다. 그런데 빈부 격차란 왜 생기는가? 고루 나눠 갖지 않기 때문에,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존재하기에 생긴다. 하느님 앞에서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죄인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단지 부자에게 고통스럽긴 하지만 올바른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자발적 가난’을 권한 걸까? 사람이 돈을 모으고 부를 일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야 물론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다. 지나친 가난은 사람을 거꾸러뜨리며, 어떤 자유와 행복도 누릴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 부는 언제나 우리를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주는가? 그렇다면 왜 누구나 인생을 마감할 때가 되면 제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던 시기로 가장 가난했던 청년 시절을 떠올리는가? 사람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데 필요한 부는 실은 아주 작다. 그걸 넘어서는 부는 우리의 마음의 결을 바꾸고, 우리의 삶에서 자유와 행복을 빼앗아간다.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을 예수 당시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소수의 지배세력을 뺀 대개의 사람들은 부를 인생의 절대적인 가치라고는 생각하지 않던 세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예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모든 사람이 돈의 신에 사로잡힌 완전한 마몬의 세상을 살아간다. 요컨대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가 같은 마음의 결을 가진, 거의 모든 부모가 제 아이를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전태일 이후, 우리는 우리의 빼앗긴 경제적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워왔다. 그 싸움 덕에 조금씩 우리의 임금이 늘어났고 우리의 삶도 좀더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싸움에 몰두하느라 어느새 부의 또 다른 측면, 꼭 필요한 수준 이상의 부는 오히려 우리에게서 자유와 행복을 빼앗아간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부가 필요하듯, 최소한의 가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렵다는 아우성이다. 우리는 잠시라도 그 아우성을 멈추고 우리의 아우성이 어디에서 오는지 조용히 되새겨 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부의 부족이 아니라, 가난의 부족 때문에 더이상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못한 게 아닌지 조용히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그런 지나친 아우성 덕에, 정말 아우성쳐야 할 사람들, 오늘 여전히 전태일의 싸움을 지속해야 하는 사람들의 깊은 신음이 덮이고 배제되고 있는 게 아닌지도.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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